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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확충 미리 서둘러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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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전경. 연합뉴스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전경. 연합뉴스

국내 원전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기 다가와

임시저장·영구처분 시설 마련 속도 높여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로 저장하는 건식 저장시설 건설 계획을 의결했다. 시설은 고리원전 부지 안에 설치되며, 사용후핵연료가 저장된 금속용기를 건물 안에 저장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계획에 따르면 7년 뒤인 2030년에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이번 의결은 뜨거운 감자였던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본궤도에 복귀하는 발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작지 않다. 원자력 발전엔 필연적으로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가 발생한다. 이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원전이 지속 가능해진다. 전문가들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빗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에서 발생한 사용후핵연료는 1만8600t으로 원전 내 습식 저장소 등 임시저장시설에 저장돼 있다. 그런데 고리원전의 경우 저장소 포화율이 87.6%로 2031년 포화하는 것으로 전망된다. 그때까지 새 저장시설이 마련되지 않으면 원전 가동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사정은 다른 원전도 마찬가지다. 한빛(2031년)과 한울(2032년) 원전도 고준위 방폐물 포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원전이 에너지 안보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데다 현 정부의 원자력 발전 확대 정책을 고려하면 방폐물 포화는 좀 더 앞당겨질 수 있다. 이번 고리원전을 계기로 한빛·한울 원전에서도 임시저장시설 확충이 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이와 함께 원전 외부의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 마련 계획도 내실 있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정부는 부지 선정 착수 이후 20년 내 중간저장시설을, 37년 내 영구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큰 그림을 갖고 있다. 하지만 부지 선정은 시작도 하지 못했다. 원전 선도국인 핀란드는 지하 깊숙한 곳의 암반에 구멍을 내 사용후핵연료를 묻는 영구처분시설을 2025년 세계 최초로 운영하고, 스웨덴은 2030년대 초 운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들 나라가 1970~80년대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논의를 시작해 40~50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됐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지난하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현재 국회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이 세 개나 계류돼 있다. 원자력계는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영구처분시설 운영 시기를 2050년으로 앞당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법적 정비만 이뤄지면 우리의 기술 수준으로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차질 없이 반드시 이뤄내야 하는 시대적 과제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정치권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국민이 신뢰할 만한 법적 토대를 마련해 주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