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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트라우마 끝, 외환시장 빗장 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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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내년 하반기부터 외환시장 거래 마감 시간이 오전 2시로 늦춰진다. 밤새 해외 주식을 거래하는 ‘서학 개미’ 투자자가 시장 환율로 바로 환전해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해외 금융기관의 국내 외환시장 직접 참여도 허용하기로 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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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는 7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외환시장 구조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폐쇄·제한적으로 운영한 외환시장 규제를 개선하는 취지다. 외환 시장에선 고정환율제를 변동환율제로 바꾼 이래 가장 큰 변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욱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은 “그동안 외화 유출을 막고, 외환위기를 다시 겪지 않기 위해 외환 제도를 보수적으로 운영한 측면이 있다”며 “이제 우리 시장이 성숙했다고 보고 외환 거래를 활성화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국내 외환 시장 마감 시간을 한국 시각으로 런던 금융 시장이 마치는 오전 2시까지 늘리기로 했다. 은행권 준비 상황 등 여건을 살펴 향후 거래 시간을 24시간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기존 거래 시간은 주식 시장이 열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였다. 다만 매매기준율(전 거래일에 거래 환율, 거래량을 가중 평균해 산출하는 시장 평균 환율)은 기존처럼 오전 9시~오후 3시 30분 기준으로 산출한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퇴근 후 야간에 미국 주식에 투자하려면 증권사를 통해 시장 환율보다 높은 ‘가(假) 환율’로 환전해야 했다. 외환 시장이 이미 마감해서다. 따라서 당초 계획한 수량만큼 주식을 살 수 없고, 외환시장이 열린 다음 날 오전 9시 이후에야 실제 시장 환율로 정산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선안에 따르면 야간시간에도 시장 환율로 바로 환전해 계획대로 투자할 수 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또 씨티은행·HSBC·BNP파리바 같은 글로벌 은행·증권사 등을 외환당국이 인가한 ‘해외 소재 외국 금융기관’, 일명 RFI(Registered Foreign Institution)로 지정해 직접 국내 외환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현물환 시장뿐 아니라 FX 스와프 거래도 개방 범위에 포함한다. FX 스와프 거래는 현물 환율로 필요한 통화를 차입하고 이를 정산하는 1년 이하 만기 단기 외화 거래를 말한다. 기존엔 해외 은행이 국내 시장에서 외환을 거래하려면 국내 지점을 세우거나 국내 금융기관의 고객이어야만 가능했다.

예를 들어 기존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시각으로 오후 10시 넘어 발표하는 미국 CPI(소비자물가지수) 결과를 보고 달러를 원화로 환전하고 싶어도 한국 외환 시장이 오후 3시 30분에 마감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시간 제약 없이, 한국이 아닌 현지 소재 금융회사를 통해서도 달러를 원화로 환전할 수 있다.

개선안은 외환시장 구조를 전격적으로 바꾸려는 정부의 첫 시도로 평가된다. IMF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간 무역 규모는 5배, 주식 거래량은 20배 규모로 불어났지만, 외환 거래량은 지지부진하다. 정부는 낡은 외환시장 규제가 환율 안전성을 떨어뜨리고, 자본·금융시장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이번 외환시장 개방으로 외국 자본의 영향력이 커져 환율 변동성이 확대되고, 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환투기 리딩 방’이 기승을 부리는 등 개인도 환에 눈을 뜬 상황”이라며 “거래량이 적은 시간대에 ‘큰 손’들이 움직이면 시장 왜곡이 발생할 수 있고, ‘환 개미’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송대근 한국은행 외환업무부장은 “외환 거래에 참여하는 외국 기관에 자격 제한을 두고, 인가 과정에서 여러 의무 사항을 부여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내년 하반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올해 3분기 외국환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 초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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