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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경호의 시시각각

민주당과 촛불의 위험한 동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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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경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서경호 논설위원

“이재명을 아무리 짓밟아도 민생을 짓밟지는 말라. 이재명을 부숴도 민주주의를 훼손하지는 말라. 나라의 미래는 망치지 말라.”(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석열 정권은 수사권을 가지고 정적 제거, 정치공작, 언론탄압, 간첩 조작 등 공안통치를 자행하고 있다. 이게 수사인가 사냥인가.”(김민웅 촛불행동 상임대표)

모두 주말인 지난 4일 서울의 ‘서로 다른’ 집회에서 나온 말이다. 이재명 대표는 민주당이 주최한 ‘윤석열 정권 민생파탄 검사독재 규탄대회’에서, 김민웅 대표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 25차 촛불대행진’에서 연설했다. 둘 다 그야말로 온몸을 던져 사자후(獅子吼)를 토했다.

주말 집회 참가자 상당 부분 겹쳐
‘대통령 퇴진’ 단체와 함께하다니
정치 부재에는 정부·여당 책임도

민주당과 촛불행동은 어제오늘 정치권에서 씁쓸하게 유행하는 말처럼 ‘동급’이 아니다. 민주당은 원내 169석을 가진 압도적 다수당이다. 진보단체가 모인 촛불행동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겨우 석 달째인 지난해 8월부터 ‘윤석열 퇴진’을 주장했다. 그 후 거의 매주 토요일 촛불을 들고 거리시위를 해왔다.

지난해에도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촛불집회 연단에 올라 대통령 퇴진을 외쳐 논란이 됐다. 민주당은 의원 개인 차원의 참가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집회는 사뭇 달랐다. 민주당과 촛불행동은 ‘따로 또 같이’ 함께했다. ‘2인3각’ 경주 같았다.

첫째, 공간이 겹쳤다. 남대문에서 시청역까지 8차로 도로는 차량 통행을 막았다. 그렇게 해서 생긴 직사각형의 공간을 남대문 쪽엔 민주당 연단이, 반대편인 시청 쪽엔 촛불행동 연단이 차지했다. 남대문 근처 한국은행 건물 앞의 일부 도로만 보수단체가 차지했을 뿐, 나머지는 민주당과 촛불행동 세상이었다.

둘째, 시간도 사실상 겹쳤다. 오후 3시30분 시작된 민주당 집회는 오후 5시 촛불행동 집회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촛불행동은 민주당 행사가 다 끝난 뒤에야 자신들의 스피커를 켜고 집회를 시작했다. 배려를 한 것이다.

셋째, 참석자도 많이 겹쳤다. 민주당 집회를 마치고 지도부는 대부분 떠났지만 이날 민주당의 드레스코드인 파란색 옷을 입고 파란색 모자를 쓴 지지자들 상당수는 남았다. 민주당 집회 참석자들이 뒤돌아 앉으면 바로 촛불행동 집회였다. 파란 물결이었다. ‘검사독재 규탄한다’ ‘물가폭등 해결하라’고 적힌 파랑과 하양의 민주당 손팻말과 ‘윤석열 퇴진’이라고 내건 촛불행동의 빨강 손팻말이 뒤섞였다. 공교롭게도 민주당과 촛불행동이 자체 추산한 참석자 수도 30만 명으로 똑같았다. 사실상 공동집회였음을 자인한 셈이다. 촛불행동은 5일 논평에서 “(이태원 참사 추모제를 포함해) 세 집회가 주최단위 간 공식 연대를 한 건 아니지만 중복 참여 인원이 많았고 같은 공간을 공유하기도 했다”며, 주말 행사를 “촛불항쟁의 분수령”이라고 치켜올렸다.

물론 촛불행동도 국민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시위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그들의 대통령 퇴진 운동에 공감하지 않는 국민도 주말 교통 불편 정도는 감내할 수 있다. 하지만 원내 다수당이 당 대표의 검찰 수사를 이유로 아스팔트로 뛰쳐나가 6년 만의 장외집회를 열고 촛불의 곁불을 쬐는 건 참으로 민망한 일이다. 게다가 일부 의원은 연단에 올라 합법적으로 당선된 대통령을 퇴진시키자는 주장까지 했다. 대선 불복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 교수는 문재인 정부 시절에 한 강연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촛불시위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사회적 갈등 해결을 위한 정치의 중심은 거리가 아니라 다양한 색깔의 정당이 경쟁하는 의회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거리의 민주당만 잘못한 게 아니다. 거리 시위는 정치 부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정치 실패가 심할수록 촛불시위도 커진다. 정부·여당의 책임도 작지 않다는 얘기다. 직진 본능의 대통령, 이를 슬기롭게 제어하지 못하는 대통령실과 여당이 촛불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