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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이나 강남규의 글로벌 머니

갈 길 바쁜 시진핑, 경제 살릴 수단이 별로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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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강남규 국제경제 선임기자

“미국이 주도하는 반(反)중 국제연대뿐 아니라 중국 내부의 갈등·불안, 공산당 내부의 권력다툼 와중에 시진핑(習近平)의 세 번째 임기가 시작됐다.”

미국 UC샌디에이고 수전 셔크 교수(국제관계)가 기자와 통화에서 한 말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3연임에 성공해 겉으론 굳건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세 번째 임기 첫해인 올해부터 순탄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다. 셔크 교수는 국무부 중국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 취약한 수퍼파워(China: Fragile Superpower)』란 책을 썼다.

셔크 교수는 “시진핑은 중국인에게 업적을 보여주려고 할 것”이라며 “특히 경제 분야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도 아래 열린 지난해 12월 공산당 정치위원회의 미팅에서 “국가는 꾸준한 성장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고 신화통신이 전했다.

3연임 성공했지만 곳곳에 암초
전문가 “올 성장 5% 못 미칠 것”
소비 진작, 인프라 확대도 한계
반도체·에너지 등에 집중할 듯

돈 풀어도 자금수요 시원찮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대국민 단배식(단체 새해 인사) 연설에서 “우리는 안정 속 성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3기의 시작인 2023년 중국 경제를 안정적 성장 최우선 기조로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풀이됐다. [AP=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20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대국민 단배식(단체 새해 인사) 연설에서 “우리는 안정 속 성장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 3기의 시작인 2023년 중국 경제를 안정적 성장 최우선 기조로 운용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한 것으로 풀이됐다. [AP=연합뉴스]

시진핑의 지난해 경제 성적표는 부진했다. 성장률이 3% 수준에 그친다는 게 서방 투자은행과 경제분석기관의 일반적인 전망이다. 목표인 5%에 미치지 못하는 성장률이다. 이는 2000년 이후에 처음 있는 일이다. 팬데믹 원년인 2020년에도 성장률이 곤두박질했다. 하지만 그때는 중국 정부가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다.

시진핑은 올해에도 ‘쌍순환(雙循環)’과 ‘공동부유(共同富裕)’란 깃발을 내걸고 있다. 쌍순환은 수출과 내수의 균형이다. 공동부유는 빈부격차 완화다. 거의 모든 나라의 정치 리더가 방법은 다를지라도 한결같이 꿈꾸는 이상향이다. 말처럼 쉽지 않다. 정치 리더들이 현실적으로 성장률 자체에 집착하는 이유다.

시진핑은 연 5%를 올해 성장 목표로 제시하며 통화와 재정정책 수단을 한도 안에서 적극적으로 쓸 전망이다. 성장 목표는 해마다 3월에 열리는 ‘양회(兩會)’에서 공식화한다.

중국 경제는 개혁·개방을 추진한 1990년대 초 이후 대출을 늘리고 정책자금을 푼 만큼 성장해왔다. 서방 이코노미스트 가운데 공식 성장률을 의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중국 경제는 상당히 예측 가능했다. 베이징 경제정책 담당자나 서방 이코노미스트 모두에 행복한 시절이었다.

요즘은 심상찮은 조짐이 엿보인다. 통화재정 정책의 효율이 떨어지는 증상이다. 영국 경제분석회사인 옥스퍼드이코노믹스(OE)가 지난주 낸 보고서를 보면, 2020년 이후 인민은행(PBOC)이 정책금리를 내렸는데 국채와 회사채 금리는 반대로 오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팬데믹 이전에는 보지 못한 현상이다. 2019년 이전까지 인민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국채와 회사채 금리가 내렸다.

특히 팬데믹 이후 돈의 가격(금리)뿐 아니라 양(Q)도 중국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인민은행 등이 지급준비율 등을 낮췄는데도, “대출이 팬데믹 이전만큼 늘어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서를 쓴 루이스 루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우려했다. 자금 공급을 늘렸는데도 수요가 시원찮아 발생한 최악의 사례는 일본에서 엿볼 수 있다. 다만 중국이 일본만큼 나빠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효율 저하는 재정정책에서도 나타났다. 시진핑이 성장목표인 5%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민간 소비를 자극하는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

하지만 최근 민간 소비가 상당히 위축돼 있다. 팬데믹 시기 소비 위축으로 쌓인 가계의 초과 저축이 7300억 달러(약 870조원)로 추정되지만, 집값이 내려가 미래가 불안해진 중국인들이 봉쇄가 풀렸다고 적극적으로 소비할지 의문이다. 또 중국 정부가 재정을 투입한 만큼 민간 투자도 늘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중국 중앙과 지방 정부가 즐겨 써온 대규모 인프라 투자도 어렵다. 팬데믹 와중에 경기부양 차원에서 지방정부 주도 아래 인프라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뤄져서다. 중앙과 지방 정부의 곳간 상황도 좋지 않다. 팬데믹 파장으로 세금이 기대만큼 걷히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재정악화를 우려해야 할 정도다.

금리 인하보다 전략산업 지원

시진핑 경제팀이 올해 주로 쓸 통화정책은 기준금리나 재할인율 인하보다 시중은행에 대한 창구지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보기술(IT) 분야 기업 등 전략 산업에 대한 정책적인 자금지원이다. 금리 인하 등은 보조적 수단이다.

재정 투입도 2008년 이후처럼 무차별 살포가 아니라 전략 산업에 집중할 전망이다. 중국통인 스티븐 로치 미국 예일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기자와 인터뷰에서 “베이징 경제관료들은 올해 서방 신용평가회사의 등급하락을 걱정해야 한다”며 “그 바람에 반도체와 친환경 에너지 등 전략 산업에 정부 돈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시진핑의 손발이 자유롭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중국이 성장목표 5%를 달성할지는 모호하다”고 한 옥스퍼드이코노믹스 루 선임 이코노미스트의 전망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반면에 로치 교수는 “2022년엔 3%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올해는 5%는 넘을 듯하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든 중국이 팬데믹 봉쇄 완화에도 올해 세계 경제의 구원투수가 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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