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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스펙트럼 가진 나영이…‘이상한 나라’에서 홀로서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뮤지컬 ‘앨리스’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소녀 나영이의 성장기를 담았다. 나영이는 채셔 고양이, 애벌레 언니 등을 만나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사진 섬으로 간 나비]

뮤지컬 ‘앨리스’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소녀 나영이의 성장기를 담았다. 나영이는 채셔 고양이, 애벌레 언니 등을 만나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다. [사진 섬으로 간 나비]

“나의 작은 딸, 너는 특이하지도 이상하지도 않아. 나의 작은 딸, 넌 불쌍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아.”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17세 소녀, 나영의 아빠 머릿속엔 어른이 되어 혼자 살아가게 될 딸에 대한 걱정뿐이다. 암 진단을 받은 아빠는 나영에게 ‘어른 되기’ 연습을 시킨다. 매일 아침 일어나 이불을 개고 세수하는 것부터 학교에 혼자 가는 것까지 사회성 훈련도 함께 한다.

어느 날 학교에 갈 준비를 하다 천둥소리에 놀라 방으로 숨는 나영. 아빠는 더는 나영을 달래줄 수 없다. 나영에게 이별을 가르쳐야 할 때다. 아빠는 나영에게 “너는 특이하지도 이상하지도 않다”며 세상에 홀로서는 법을 알려준다.

뮤지컬 ‘앨리스’는 루이스 캐럴의 고전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모티프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나영의 성장기를 그려냈다.

오는 26일까지 서울 동국대 이해랑 예술극장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앨리스’는 나영이 이상한 나라로 모험을 떠난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어른이 되면 이별해야 한다는 아빠의 말에 상심한 나영은 토끼 인형에게 “아빠와 이별하지 않고 평생 함께 살고 싶다”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토끼 인형이 알려준 이상한 나라는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곳, 이별이 없는 나라”다. 나영은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의 나영은 길 잃은 장애인이다. 나영은 이상한 나라로 모험을 떠났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세상 속의 미아가 됐을 뿐이다. 나영이 이상한 나라에서 만난 후크 선장과 애벌레 언니, 파란 여왕도 현실 세계에 사는 나영의 이웃들이다. 경찰관은 후크 선장으로, 이웃집 언니는 애벌레로, 특수학교 선생님은 파란 여왕으로 나타나 길 잃은 나영을 도와준다. 나영은 아빠와 이별을 하기 싫어 이상한 나라로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그곳은 선한 이웃들이 있는 현실 세계였던 것이다.

이상한 나라와 현실 세계를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무대 연출이 흥미롭다. 원형의 무대 장치가 회전하며 나영의 집, 학교, 네버랜드로 변신한다. 다소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극은 명랑하고 희망찬 분위기로 흘러간다.

6일 현재 관람 평점 4점(5점 만점)을 기록한 예스24 관객 평 중에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성장하는 나영의 모습에서 위로를 받는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다만, “장애 청소년을 귀엽게만 묘사했다” 등의 지적도 있다.

박고은 제작PD는 “냉정하게 보이는 세상이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이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며 “나영을 도와준 피터팬과 애벌레 언니가 나영을 통해 위로받듯 누구나 도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받기도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뮤지컬 ‘앨리스’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우수 창작 작품 발굴 프로젝트 ‘2022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뮤지컬’에 선정됐다. ‘앨리스’ 외에 ‘청춘소음’ ‘다이스’ ‘윌리엄과 윌리엄의 윌리엄들’ 등이 함께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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