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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보안당국 "이란, 서방 거주 반체제 인사 암살에 조폭 동원"

중앙일보

입력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성인권 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를 암살하기 위해 이란에 고용된 것으로 알려진 동유럽 갱단 소속 메흐디예프. AP=연합뉴스

미국에서 활동하는 여성인권 운동가 마시 알리네자드를 암살하기 위해 이란에 고용된 것으로 알려진 동유럽 갱단 소속 메흐디예프. AP=연합뉴스

이란이 서방에서 활동 중인 자국의 반(反)체제 인사를 암살하기 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하고 있다는 영국 보안당국의 주장이 나왔다.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익명의 영국 보안당국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이란 정보기관이 수십만 달러를 주고 갱단과 조직화된 범죄 단체 등을 고용해 영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하는 반체제 인사들의 살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범죄 조직에 납치된 반체제 인사는 이란으로 끌려가 사형 선고를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워싱턴포스트(WP)도 익명의 미국·유럽·중동 소식통 15명을 인용해 "이란 당국의 청부 살인 시도 속도가 최근 2년간 상당히 빨라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이란혁명수비대(IRGC)를 꼽았다.

그간 영국 첩보기관은 이란 정부의 반체제 인사 암살에 대해 경고해왔다. 지난해 11월 켄 멕컬럼 영국 보안정보국(MI5) 국장은 "지난해 이란은 영국에서만 10차례 이상 반체제 인사에 대한 납치 혹은 암살을 시도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다만 이란이 실행한 구체적인 암살 방식 등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았다.

이란 정부가 반체제 인사 암살에 정부의 비밀 요원이 아닌 범죄 조직을 동원한 이유는 서방의 이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서라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매체는 "서방의 각종 제재로, 이란 정부가 비밀 요원의 서방 내 활동을 지원하거나 자산을 운용하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란 정부가 서방 국가와의 외교적 분쟁을 피하고 이란 정부의 직접적 개입을 부인하기 위해 범죄조직과 비밀리에 결탁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이란을 비판적인 기사를 써온 언론인 포킨 아자르메르는 "영국 경찰은 '이란이 암살을 (직접 나서지 않고) 갱단에 사주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내게 전했다"면서 "그들(이란의 사주를 받은 갱단)은 길거리 폭동을 꾸미거나 지하철 승강장에서 등을 떠미는 식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영국 대테러 경찰은 런던을 거점으로 삼은 수백 명의 이란 반체제 인사에게 호신술 등을 알려주고 있다.

특히 이란 정부는 '히잡 시위'를 옹호하는 인물들을 주요 표적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히잡 시위는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영국 런던에 있는 이란어 방송 매체인 이란인터내셔널이 이란 측의 살해 위협을 받아, 현지 경찰이 무장 병력을 배치했다. 이란인터내셔널은 아미니의 죽음 이후 TV와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반정부 시위 관련 뉴스를 24시간 보도하고 있다.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이란계 미국 언론인인 마시 알리네자드가 지난해 7월 이란으로부터 고용된 갱단의 습격을 받았다. 사진은 알리네자드가 지난해 9월 뉴욕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다가 목숨을 잃은 한 여성의 사진을 들어보이는 모습. AP=연합뉴스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이란계 미국 언론인인 마시 알리네자드가 지난해 7월 이란으로부터 고용된 갱단의 습격을 받았다. 사진은 알리네자드가 지난해 9월 뉴욕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를 지지하다가 목숨을 잃은 한 여성의 사진을 들어보이는 모습. AP=연합뉴스

미국에서도 반체제 인사에 대한 공격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계 미국 언론인이자 여성인권 운동가인 마시 알리네자드는 지난해 7월 미국 뉴욕의 자택에서 동유럽 갱단의 습격을 받았다. 알리네자드는 이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왔다.

용의자 메흐디예프(24)는 암살에 사용할 AK-47 소총을 구입하기 위해 이란으로부터 현금 3만 달러(약 3700만원)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거 당시 용의자 차량에선 현금 1000달러(약 125만원)가 발견됐다.

'도둑들'로 불리는 이 갱단은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절도·폭행·납치·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악명 높다. 미국 검찰은 지난달 살인 미수, 자금 세탁 등 혐의로 알리네자드 사건에 연루된 갱단 조직원 3명을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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