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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에 박아 놓나” 추모공간 거절한 유족…서울시 “유족과 논의해 제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출근시간대를 넘긴 6일 오전 10시쯤 서울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지하 4층은 시민 5~6명만이 보이는 등 한적했다. 서울교통공사 자료에 따르면 녹사평역은 지난해 일일 평균 승하차 인원이 9742여명으로, 강남역(14만2195명)이나 홍대입구역(11만8769명)과 같은 서울 다른 지하철역과 비교했을 때 유동인구가 적은 편이다.

녹사평역 지하 4층까지 깊이는 35m로, 역사 내부를 가로지르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두 차례 타고 내려와야 한다. 이곳엔 통로와 개찰구, 대합실과 함께 ‘지하예술정원 숲 갤러리’란 이름의 조형물이 있고, 조명이 밝아 어둡지는 않았다. 비교적 쾌적한 느낌도 들었다. 이곳에 159명이 숨진 10·29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설치하자는 게 서울시 제안이다.

6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 지하 4층 내부의 모습. 서울시는 이곳에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설치하자고 유족 측에 제안했다. 유족 측은 일방적 통보라며 서울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다. 나운채 기자

6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 지하 4층 내부의 모습. 서울시는 이곳에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설치하자고 유족 측에 제안했다. 유족 측은 일방적 통보라며 서울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다. 나운채 기자

유족 측 “땅속 깊이 들어가란 건가”

유족 측은 서울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관계자는 서울시가 제안한 녹사평역 실내 추모 공간에 대해 이날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장소를 결정하고, 유족을 몰아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 및 대책회의 측은 녹사평역 지하 4층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유족을 사회로부터 고립하게 하며 게토(ghetto·격리 지역)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녹사평역은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 곳인 데다 추모 공간도 지하 4층이라 깊은 곳에 있다”며 “그곳으로 내려가는 유족 심정은 어떻겠는가, ‘유족을 지하에 박아 놓으려 한다’는 생각이 안 들겠는가”고 반문했다.

6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 지하 4층 내부의 모습. 서울시는 이곳에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설치하자고 유족 측에 제안했다. 유족 측은 일방적 통보라며 서울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다. 나운채 기자

6일 오전 서울 녹사평역 지하 4층 내부의 모습. 서울시는 이곳에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을 설치하자고 유족 측에 제안했다. 유족 측은 일방적 통보라며 서울시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단 입장이다. 나운채 기자

서울시 측 “층구 높고 음습한 곳 아냐”

이에 대해 서울시는 유족과 논의를 거치는 과정에서 추모 공간 장소를 제안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유족과 사전 논의 없이 녹사평역을 시가 일방적으로 제시했단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유족 측에서 ‘이태원 인근 상징성이 있는 장소에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해 녹사평역 인근 민간건물 3곳을 제시했지만, 유족 측이 수용하지 않았단 게 서울시 측 설명이다.

이동률 서울시 대변인은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유족 측이) 이태원 인근 상징성이 있는 장소의 공공건물에 마련하길 원했다”며 “(그래서 녹사평역을) 공공건물로 제시한 것이고, (유족 측은) 수용 여부를 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녹사평역 자체가 층고가 높고, (제안한 추모 공간은) 개찰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있다”며 “음습한 곳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또 “기후 여건과 무관하게 사용할 수 있고, 유족이나 관계자 간 소통 공간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6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 설치된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분향소 2차 철거 계고장 ‘8일 오후 1시’ 

서울시는 지난 4일 서울광장에 기습 설치된 분향소의 강제 철거 기한을 계고장을 통해서 ‘6일 오후 1시’로 예고했다. 그러나 이날 예정된 시간에 행정대집행은 진행되지 않았다. 자진 철거를 유도하는 계고를 2회 이상 해야 한단 판례에 따른 조처다. 시청 관계자는 이날 오후 5시30분쯤 분향소에 2차 계고장을 전달했다. 오는 8일 오후 1시까지 분향소를 자진 철거하란 내용이었다. 유족 측은 계고장 수령을 거부했다.

계고장 전달 후 서울시는 오신환 정무부시장 명의로 “어떤 명분으로도 사전 통보조차 없이 불법·무단·기습적으로 설치된 시설물은 사후 허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분향소와 위로 공간 문제는 유가족과 논의를 계속할 것이지만 시설물 관리에 대한 분명한 원칙은 변함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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