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기 문란도 文정부 업보?…나사빠진 군, 미 7함대 해법 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군기 문란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육군과 공군이 소형 무인기가 영공을 5시간 휘젓고 다녔는데도 허둥지둥하다 놓친 뒤 이 같은 사고가 봇물 터지듯 나고 있다. 이에 따라 개인의 일탈 차원을 넘어서 군 전체의 기강이 느슨해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군 당국에 따르면 해군은 고속정과 호위함의 허위 보고 사건을 조사 중이다.

지난해 12월 30일 전역한 해군 호위함 전남함. 지난해 6월 함장이 전남함을 자가용처럼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군

지난해 12월 30일 전역한 해군 호위함 전남함. 지난해 6월 함장이 전남함을 자가용처럼 썼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군

지난해 11월 해군 2함대 소속 150t급 참수리 고속정이 인천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의 충돌 사고로 선체가 크게 파손됐다. 당시 사고 고속정의 A 정장과 함께 편대를 이뤘던 고속정의 B 정장은 “바다에 떠내려온 부유물과 부딪쳤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실제론 암초를 피하지 못해 일어난 사고로 드러났다. A 정장은 관련 기록을 삭제했고, B 정장은 A 정장의 거짓 보고에 가담했다.

앞서 지난해 6월 제3함대 소속 1500t급 호위함 전남함이 임무 도중 긴급히 수리가 필요하다며 제주 기지에 입항했다. 그러나 함정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군사 경찰에 따르면 당시 전남함의 함장은 제주 기지에서 열린 상관의 이ㆍ취임식에 참석하려고 긴급 입항 지시를 내렸다는 실무자의 진술이 있었다.

이쯤이면 육ㆍ해ㆍ공군을 가리지 않고 전군의 기강 해이가 심각하다는 조짐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은 여러 군기문란 사고에 대해 군 당국을 강하게 질책했다.

군 당국은 해당 군기 문란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 중이며, 전반적인 대비 태세엔 이상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통계적으로 대형 사고 한 건이 일어나기 전에 여러 건의 소형 사고와 징후가 나타난다(하인리히 법칙). 군 전체의 기강을 다잡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난해 8월 육군 50사단 낙동강여단 장병들이 격장에서 열린 유격훈련과 참호격투를 마친 뒤 냉수로 샤워를 하며 무더위를 씻어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8월 육군 50사단 낙동강여단 장병들이 격장에서 열린 유격훈련과 참호격투를 마친 뒤 냉수로 샤워를 하며 무더위를 씻어내고 있다. 뉴스1

군 안팎에선 나사가 빠진 군기가 문재인 정부의 업보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찬물을 끼얹지 않겠다며 대규모 연합 훈련을 아예 열지 않았고, 야외 기동훈련과 정신교육도 많이 줄인 게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일례로 대공 사격훈련 횟수가 문 정부가 출범한 해인 2017년 138차례에서 정부가 바뀐 2022년 89차례로 눈에 띄게 적어졌다. 그 결과 북한 소형 무인기가 영공을 침범했을 때 군 당국은 격추에 실패했다. 군 소식통은 “당시 육군 1,9사단, 해병 2사단에서 열상감시장비(TOD)로 북한 소형 무인기를 확인 후 촬영했다. 그런데도 그대로 보냈다는 건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라고 귀띔했다.

합참 차장과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낸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풀어진 군의 기강을 다시 조이려면 시간이 최소 1년 반이 걸린다”며 “훈련을 늘리고, 대적관을 확실히 심으면서 정병(精兵)을 양성하는 것만이 대책”이라고 말했다.

지난 정부에서 병사의 인권과 복지를 강조하면서, 상대적으로 군 기강에 대한 인식이 약해졌다는 군 내부의 반성이 있다. 상당수 일선 지휘관이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모습도 보였다.

구조적인 문제점을 외면하고, 지난 정부의 탓으로만 돌려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군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지 살펴보고, 개선ㆍ보완해야 할 사항을 파악하기보다는 구태의연하게 ‘군기확립’만 강조하는 지휘 방침에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또 다른 군 소식통은 “북한 무인기 사태 후 각종 검열과 조사가 이어지면서 일선 부대가 상당히 위축됐다. 최근 군 지휘부가 4시간 넘게 일선 지휘관을 강하게 깨면서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면서 “위에서 다그치기만 하니, 사소한 문제가 보이면 일단 감추고 싶어하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2017년 미국 해군 사례는 군 당국이 참조할 만하다. 당시 한반도 근해를 포함한 미 7함대의 책임 구역에서 4차례의 해상사고가 발생했다. 이들 사고로 함정이 부서졌고, 17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함대 사령관이 책임을 지고 군복을 벗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미국 해병대원이 참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전투 지역에선 수면 부족이 일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피로도는 전투태세를 약화시킨다. Five Thousand Drones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 미국 해병대원이 참호 속에서 잠을 자고 있다. 전투 지역에선 수면 부족이 일상이다. 그러나 지나친 피로도는 전투태세를 약화시킨다. Five Thousand Drones

미 해군은 조사를 벌인 뒤 군기 이완, 훈련 부족과 함께 피로도를 사고의 원인으로 꼽았다. 당시 중국과 북한의 도발로 미 해군은 출동이 잦았고, 경계 임무가 길어지면서 장병의 수면 시간이 줄었다.

그러자 미 해군이 숙면을 보장했더니 준비태세가 높아지고 사고가 줄었다. 군대 문화를 연구하는 김진형 예비역 해군 소장은 “병명을 먼저 진단한 뒤 처방을 내리듯 지휘부가 군 내부를 꼼꼼하게 들여다봐 무엇이 문제인지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석주 전 국방정책실장은 “병사 복무기간이 줄고 월급이 오르면서 초급 장교와 부사관이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며 “군의 등뼈인 이들이 흔들리면 앞으로 더 심각한 군기 문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