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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게시판에 조명 왜?…에너지 역주행, 지자체 불명예 1위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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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년기획 - 비싼 에너지 시대, 에너지 과소비 스톱<2>

지난달 31일 아무 작품도 걸려있지 않은 구청 내 갤러리 공간에 여러 색상의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다. 서지원 기자

지난달 31일 아무 작품도 걸려있지 않은 구청 내 갤러리 공간에 여러 색상의 조명이 환하게 켜져 있다. 서지원 기자

지난달 31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의 한 구청. 계단과 복도 한쪽에 마련된 '갤러리'엔 형형색색의 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작품은 하나도 걸려있지 않았다. 지나는 이도 거의 없어 더욱 휑한 모습이었다.

인근 또 다른 구청. 아무도 없는 대형 세미나실에는 전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훤한 대낮이라 자연 채광이 잘 되는 시간이었지만 관심을 갖고 관리하는 이는 없는 듯 보였다.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은 지난해 10월부터 '에너지 다이어트 10'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에너지 절약과 효율 향상이 '발등의 불'이 됐기 때문이다. 실내 온도를 내리고, 필요 없는 조명을 꺼 에너지 사용량을 10% 이상 줄이겠다는 게 캠페인의 목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하지만 중간점검 결과 상당수 지자체에서 에너지 사용량이 예년보다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비 폭탄을 시작으로 에너지값 급등의 여파가 본격적으로 미치기 시작했지만, 공공부문에서조차 여전히 낭비와 비효율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5일 국민의힘 한무경 의원(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이 정부로부터 받은 '지자체별 에너지 사용실적 점검 내역' 자료에 따르면 공공 부문 가운데 특히 지자체의 에너지 절감 실적이 눈에 띄게 저조했다.

한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556개 공공기관의 에너지 사용량은 최근 3년 같은 달의 평균 사용량보다 4.4% 줄어드는 데 그쳤다. 더구나 목표치인 10% 이상 줄인 기관은 153곳(27.5%)에 불과했다. 공공기관 네 곳 중 한 곳 정도만 절감 목표를 달성한 셈이다.

특히 지자체는 나란히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의 11월 에너지 사용량은 3년 평균치보다 각각 1.9%, 0.04%만 줄었다. 시ㆍ도교육청(12.4%), 지방공사ㆍ공단(12.2%) 등과 비교하면 절감률이 거의 낙제 수준이다.

지난달 31일 점심시간 직후 아무도 없는 구청 내 대형 세미나실에 전등이 켜져 있는 모습. 서지원 기자

지난달 31일 점심시간 직후 아무도 없는 구청 내 대형 세미나실에 전등이 켜져 있는 모습. 서지원 기자

전체 공공기관 에너지 사용량의 94%는 전기다. 전기만 놓고 보면 기초지자체는 오히려 11월 한 달간 사용량이 2.8% 늘며 '역주행'했다. 광역지자체도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전기를 썼다. 정부도 "(지자체의) 절감률이 상대적으로 낮아 절감 노력이 매우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광역지자체 17곳 중 5곳은 11월 에너지 사용량이 3년 동월 평균치보다 늘었다. 특히 경기도의 증가 폭은 11.9%에 달했다. 이어 제주(6.7%), 경남(5%), 경북(2.2%), 충남(1.7%) 등도 에너지 사용이 증가했다. 10% 절감 목표를 달성한 건 전남·대전 단 두 곳이었다.

시·군·구로 내려가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기초지자체 224곳 중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한 곳은 절반 넘는 117곳이었다. 10% 절감 목표치를 맞춘 지자체(40곳)의 세 배에 가깝다. 특히 전북 14개 기초지자체 중 11곳에서 에너지 사용이 늘었다. 대전도 5개 자치구 가운데 4곳이 에너지를 더 많이 썼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수도권의 30대 지자체 공무원 A씨는 "중앙부처에서 에너지 사용을 줄이라는 공문은 많이 내려오지만 일선에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며 "실천 여부를 따로 점검하지 않는 데다 지자체장이 특별히 관심을 갖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무경 의원은 "12월 이후 상황도 크게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에너지 위기 시대에 지자체 등 공공 부문부터 에너지 다이어트에 모범을 보여야 민간도 따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싼 에너지 시대, 에너지 과소비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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