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에는 있고 이재명엔 없는 것…두 대북송금, 닮은 듯 다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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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쌍방울 대북송금을 둘러싼 의혹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관련 수사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2000년 현대 대북송금 사건이 다시 회자되고 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의 구조가 현대 대북송금 사건의 축소판이라서다. 규모(현대 4억5000만 달러, 쌍방울 800만 달러+α)에선 현격한 차이가 나지만 송금 목적과 방법 등에선 닮은 구석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측대표단 환송오찬 헤드테이블에서 김대중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희호여사,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 등이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0년 6월15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열린 남측대표단 환송오찬 헤드테이블에서 김대중대통령, 김정일 국방위원장, 이희호여사,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 등이 함께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을 합창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이즈는 달랐지만…닮은 꼴 대북송금

①방북비용 대납
판결문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DJ)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2000년 6월13일~6월15일)을 앞두고 3차례(같은 달 8일,9일,12일)에 걸쳐 북측에 4억5000만 달러를 전달했다. 2003년 송두환 특검팀의 기소에 따른 재판에선 이 중 3억5000만 달러는 북측이 각종 사업권을 제공한 것에 대한 대가로, 1억 달러는 정부가 약속한 돈을 대납한 것으로 판단됐다. 북측은 정부가 1억 달러를 내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현대에 지급보증을 요구했고, 현대는 통신 사업권 등을 추가로 독점 확보하는 것을 조건으로 수락해 돈을 건넸다.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진술한 8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중 500만 달러는 경기도가 북측에 약속한 스마트팜 사업 비용을 대납한 것이었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의 공소장에는 2018년 12월말 중국 단둥에서 김 전 회장 등 쌍방울 관계자를 만난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이 “쌍방울그룹이 경기도를 대신해 스마트팜 비용 50억원을 지원해달라”고 제안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김 전 회장은 이 돈을 2019년 1월과 4월 두차례 걸쳐 북측에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또 300만 달러를 “이재명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조 북측에 전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는데 이 시점은 이재명 경기지사 직인이 찍힌 방북 요청 공문이 작성된 시점과 같은 2019년 11월이었다.

②‘쪼개기 송금’
돈을 달러화로 바꾼 뒤 ‘쪼개기 송금’이 이뤄졌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현대 자금의 환전과 송금은 국정원이 도왔다. 2억 달러는 외환은행 본점에서 국정원 직원 5명 명의를 거쳐, 2억 5000만 달러는 현대건설의 해외지사 계좌에서 북한의 해외은행 계좌들로 분산 이체됐다.

국가적 지원을 받지 못한 김 전 회장은 환전한 돈을 임직원 수십명을 동원해 중국으로 날라야 했다. 김 전 회장의 ‘금고지기’가 나눠준 돈을 직원들이 책 사이 등에 끼워 밀반출하면, 중국에서 기다리던 방모 부회장이 돈을 모아 송명철 아태위 부실장에게 넘기는 방식이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외화 밀반출이 적발되지는 않을지 우려했지만, 이화영 당시 평화 부지사가 ‘이번 정부에서는 국정원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며 안심시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③기상천외 이권 약정
쌍방울그룹과 북한이 약정했던 이권도 현대그룹이 챙기려던 이권에 버금갈 정도로 다종다기하다. 현대가 북한과 체결한 ‘대북 경제협력 합의서’에는 ▶금강산과 백두산 등에 카지노와 골프장을 조성·운영하고 ▶금강산댐 물을 남한에 공급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었다. 김 전 회장도 북측에서 ▶희토류 등 지하자원개발 협력사업 ▶철도 건설 및 신도시 개발 사업 등 6가지 우선적 사업권을 약속하는 내용의 경협합의서를 받아냈다.

이재명 ‘제3자 뇌물’의 꼭짓점에 몰리는 이유  

해외 도피 중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 쌍방울 그룹 전 회장이 1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5월 말 검찰의 압수수색을 앞두고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태국으로 거처를 옮겨 8개월 가까이 도피했다. 공항사진기자단

해외 도피 중 태국에서 붙잡힌 김성태 쌍방울 그룹 전 회장이 17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수사를 받던 김 전 회장은 지난해 5월 말 검찰의 압수수색을 앞두고 싱가포르로 출국한 뒤 태국으로 거처를 옮겨 8개월 가까이 도피했다. 공항사진기자단

 2003년 송두환 특검은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대북 송금 사실을 인지한 것은 맞다”면서도 “위법행위에 개입한 정황은 파악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수사하는 수원지검(검사장 홍승욱)의 칼끝은 이재명 대표를 향하고 있다. 이 대표에게 ‘제3자 뇌물제공죄’를 적용할 여지가 크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2003년 특검 수사는 ‘통치행위론’(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 행위에 대해서는 이른바 ‘통치행위’로 보고 법원 스스로 사법심사권 행사를 억제해 심사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의 강한 맞바람을 맞으며 시작됐다. 당시 특검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제3자뇌물제공죄 의율을 고려할 상황은 아니었다”며 “오히려 DJ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이 잠시 검토된 정도”라고 말했다. 2000년 대북송금 사건을 심리한 법원 역시 송금의 방법과 절차에서 생긴 관련자들의 남북교류협력법·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 등을 인정하면서도 “남북정상회담의 개최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당부를 심판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대통령이 아닌 경기지사의 방북 시도에 대해서는 ‘통치행위론’이라는 방어막을 활용할 여지가 없다. 그만큼 북측에 건넨 돈의 성격을 검찰이 해석할 여지도 넓어지는 셈이다. DJ의 뇌물 제공이 논외였던 2000년 대북송금 사건에서 법원은 현대가 보낸 돈의 성격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현대가 북한에 보낸 돈이 정상회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서도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성이 있는 돈인지를 두고 논자에 따라 의견이 극심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법원이 대가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고 판결문에 썼다.

'쌍방울 대북송금'을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 등을 향한 각종 이권 청탁의 포괄적 대가로 볼만한 정황들은 갈수록 쌓이고 있다. 대북 송금 이후 쌍방울그룹이 북한과 직접 약정한 사업들 외에도 경기도의 공공배달 앱(‘배달 특급’)사업이나 태양광 시설 건립 사업 등에 뛰어드는 등 무차별적인 이권 획득을 시도했던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기 어려운 대북 사업 특성상 쌍방울이 경기도와 북한 사이 교류를 지원하고 이권을 얻었다면 제3자 뇌물제공죄가 적용될 수 있다”며 “이재명 대표가 송금 경위나 청탁의 존재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정황을 얼마나 찾아내는지가 수사의 관건”이라고 짚었다.

2003년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대북송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일보

2003년 송두환 특별검사팀이 대북송금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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