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술병 그냥 버렸다? 당신이 안 찾아간 320억 여기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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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8시 9분 경. 기자가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보증금을 받기 위해 빈 병 2병을 반납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4일 오후 8시 9분 경. 기자가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보증금을 받기 위해 빈 병 2병을 반납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320억 700만 원.
술이나 음료를 마신 소비자가 남은 빈 병으로 찾을 수 ‘있었던’ 돈이다. 소비자들이 빈 병을 반납하면 돌려받을 수 있는 돈(빈 용기 보증금)이 정부 산하 기관에 고스란히 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5일 환경부가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환경부 산하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COSMO)에 쌓인 미반환 ‘빈 용기 보증금’(일명 공병 보증금)은 지난해 말 기준 320억700만원이었다. 소비자들이 마시는 술이나 음료의 빈 병은 환경부가 정한 절차에 따라 반납하면 규격당 70~350원을 받을 수 있다.

순환하지 않는 빈 병 보증금

소비자가 병맥주 한 병을 사서 마신 뒤 인근 편의점이나 마트 또는 COSMO가 설치한 무인 회수기에 반납하면 130원을 돌려받는다. 그러나, 이 제도(빈 용기 보증금제)를 잘 모르거나 알아도 번거로워서 보증금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찾아가지 않은 보증금이 COSMO에 누적된 것이다. 주류 등 제조업체는 빈 용깃값을 COSMO에 적립하고 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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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용기 가격이 수십 원대에서 2017년부터 100원대로 뛰면서 고물상 등을 통한 회수율은 올라갔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제도 이용은 쉽지 않아 회수되지 않은 쌓여 있는 보증금 규모가 커졌다.

공병 보증금을 받는 일은 실제로 번거로웠다. 기자가 빈 병 2개를 반납하기 위해 지난 4일 저녁 8시쯤 서울 서대문구의 편의점 3곳과 수퍼마켓 1곳을 들렀더니 바로 반납할 수 있었던 곳은 한 곳뿐이었다. 일반 수퍼마켓 종업원은 “둘 곳이 없어 우리 가게에서 음료나 술을 사 간 사람 것만 받고 있다”고 했고 편의점 2곳은 “평일에만 수거한다” “반납 시간제한이 오후 3시”라고 거절했다.

4일 오후 8시 9분. 기자가 방문한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 빈 병 각 1개씩 총 2개를 반납하고 230원을 받았다. 정은혜 기자

4일 오후 8시 9분. 기자가 방문한 서울시 서대문구의 한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 빈 병 각 1개씩 총 2개를 반납하고 230원을 받았다. 정은혜 기자

소매점 업주들은 “둘 공간이 부족해 바깥에 두면 누군가 공병을 가져가 버려서 공병 값을 소비자에게 주면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긴다”고 하소연을 했다. 기자가 소주와 맥주 각각 1병씩 반납하고 영수증과 함께 230원을 돌려받은 가게는 테라스 공간이 넉넉한 편의점이었다. 이 편의점 관계자는 “빈병 수거 업체가 일주일에 3번 온다. 그래서 하루에 빈 병을 받을 수 있는 수량을 30개로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박스째 빈 병을 들고 오는 분도 간혹 있어 실랑이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무인회수기 설치에 11억원 썼지만…

빈 용기 보증금 제도는 공병 수거율을 높이기 위한 환경 친화 정책이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도·소매점은 3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빈 용기 보증금 반환 거부 신고는 총 3453건이었다. 소비자와 도·소매점 사이의 실랑이가 과태료 부과로 이어진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보증금 반환 거부 신고자에게는 신고보상금(1만~5만원)이 지급되는데, 지난 5년간 누적 포상금은 1323만원이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소매점의 어려움과 소비자 권익을 고려해 무인 회수기가 대안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5일 현재 전국에 설치된 빈 병 무인회수기는 147대에 불과하다.

COSMO는 미반환 빈 병 보증금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쓸 수 있는데, 지난해 무인회수기 설치와 운영에 쓴 돈은 11억9400만원이었다. 무인 회수기 34대를 설치했다. 지난해 COSMO는 미반환 빈 병 보증금 234억원을 썼는데, ‘환경보전을 위한 활동’(약 80억원), 홍보사업(약 61억원), 보증금과 취급수수료 처리지원금의 집행 관리 등을 위한 비용(약 46억원) 등에 쓰였다. 지난해 234억원을 쓰고 남은 게 320억여 원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환경부 산하 기관에 공병 보증금이 계속 쌓이는 구조인데, 공병 반납에 소비자와 소매업자들이 어려움 겪지 않도록 무인회수기 설치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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