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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연금 지옥의 도래,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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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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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국민연금을 집어삼키고 있다. 연금은 일하는 사람이 은퇴자를 먹여살리는 구조의 사회보험이다. 그런데 일하는 사람은 줄고 은퇴자는 넘쳐나고 있다. 이대로 가면  2055년에 기금이 바닥난다. 1990년생이 수급 대상인 65세가 되는 해다. 연금제도를 유지하려면 소득의 9%인 현재의 보험료를 2060년 30%(회사가 절반 부담)까지로 계속 올려야 한다. 지금은 가입자 4명이 노인 1명을 책임지지만 2060년에는 5명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드디어 “국민연금을 철폐하고 노후를 각자 책임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고령자들도 선진국 평균 3배에 가까운 노인빈곤율(37.6%)에 신음하고 있다. 청년과 노인이 한목소리로 “나의 미래를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는 왜 존재하는가”라고 묻고 있다.

2060년 가입자 부담 5배로 늘어
‘연금 철폐, 각자 노후 준비’ 주장
희생적 결단 안 하면 해결 불가능
공산화 막은 농지개혁 본받아야

윤석열 대통령은 “과거 정부가 연금 문제를 제기하면 표가 떨어지고 여야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아 본격적으로 논의하지 않았으나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 향후 수십 년간 지속될 연금개혁의 완성판을 만들겠다”고 했다. 비겁한 전임자들과 다른,  용감한 대통령이다. 국민연금은 1988년 노태우 정부 때 소득의 3%를 내면 70%를 받아 가는 구조로 탄생했다. 98년 김대중 정부의 개혁 이후 25년째 보험료가 9%에 묶여 있다. 독일(18.7%) 일본(17.9%)·영국(25.8%)·미국(13.8%)보다 훨씬 낮다. 윤 대통령의 약속대로 지체없이 수술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미래세대의 고통을 줄이려고 현 세대의 지갑에 손대는 건 정치적 자해(自害)행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보험료를 인상하자는 개혁안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청와대 대변인)는 이유로 거부했다. 이런 직무유기가 새 정부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올해 10월 정부안 확정에 앞서 가동 중인 국회연금개혁특위 민간자문위원회는 시한이 지났지만 단일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혁명적인 사건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수천년 된 지주-소작인의 신분제를 깨고,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의 경계를 허물어 민주공화국의 대전제를 구축한 농지개혁이다. 해방 이후의 사려깊은 지도자들은 제헌헌법 86조에 “농지는 농민에게 분배하며…”라고 꽝꽝 대못을 박았다. 신생 대한민국의 1호 개혁은 농지개혁이었다.

1950년 시행된 농지개혁법은 경작 농민이 수확량의 30%씩 5년간 상환하면 지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도록 했다. 일제 강점기 소작료는 50%였다. 유상몰수 유상분배였지만 사실상 거져 받은 셈이다. 농지 소유 상한선은 3정보(9000평)로 정하고 소작을 금지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도록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지주계급은 사실상 해체됐다.

토지의 분배 상태가 평등할수록 식량 증산과 교육 보급이 잘 이뤄진다. 우수한 노동력의 양성과 신흥 자본가의 출현도 쉬워진다. 파격적인 개혁의 결과 농촌 인구 상위 4%의 소득이 80% 감소하고 하위 80%의 소득이 20~30% 증가했다. 불평등이 확실하게 완화된 것이다. 일제 당시 200만t 수준이던 쌀 공급량은 1960년 초 350만t으로 증가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토지혁명”으로 규정했다(『죽산 조봉암 평전-자유인의 길』 이택선).

개혁이 성공한 것은 정파를 초월해 합심했기 때문이다. 반공주의자 이승만 대통령은 뜻밖에도 전향한 공산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그는 헌법 제정 당시 이승만이 주장한 대통령 중심제를 “독재의 폐단이 염려된다”고 결사 반대한 정적(政敵)이었다. 그런데도 “공산당의 유혹에 넘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사는 일은 조봉암이 적임”이라고 판단했다. 조봉암은 농지개혁을 “봉건적 사회조직을 근대적 자본주의 제도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국회 속기록)으로 규정했다. 봉건 노예로 살아온 소작농은 내 땅을 가진 근대 자작농이 됐고, 6·25 남침 때 공산군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승만의 냉철한 판단이 김일성의 오판을 이기고 나라를 지켰다.

대지주인 한민당 지도자 김성수는 공산화를 막으려면 개인 재산권 침해를 감수해야 한다고 믿었다.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교수의 설득이 있었다. 독립운동가였던 한민당 라용균 의원은 자기 농지를 소작인들에게 무상으로 분배했다. 우파 문학을 대표하는 김동리도 “농지개혁과 주요 기업의 국유를 주장하는 것이 좌익이라면 조선 사람은 전부 좌익”이라며 농지개혁을 지지했다.

중환자가 된 연금을 수술하려면 농지개혁 때처럼 지도자들이 한마음으로 희생적인 결단을 내려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70% 이상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득대체율을 60%에서 40%로 낮췄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국민 70%가 반대하지만 “올해 안에 연금개혁을 끝내겠다”며 정치생명을 걸었다. 물거품 같은 지지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 공동체의 존속과 통합이다. 오늘의 눈 먼 정치인들은 과연 연금지옥의 도래를 막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