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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정호의 시시각각

고려 금동불상은 영원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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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지난 1일 대전고등법원에서 일본 사찰의 소유권을 인정한 금동관음보살좌상(왼쪽)과 경기도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둘이 어딘 듯 닮아 보인다.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진 문화재청]

지난 1일 대전고등법원에서 일본 사찰의 소유권을 인정한 금동관음보살좌상(왼쪽)과 경기도 양평 용문사 금동관음보살좌상. 둘이 어딘 듯 닮아 보인다. 고려시대 불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사진 문화재청]

가로 56㎝, 세로 45.5㎝, 높이 50.5㎝, 무게 38.6㎏의 불상 한 점이 있다. 고려 말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전문가들은 고려시대 불상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온화하고 넓적한 얼굴, 가슴에 두른 목걸이, 머리 위의 보관(寶冠), 무릎을 덮은 영락(瓔珞·구슬) 장식 등 넉넉하고 개방적인 고려의 향기를 담고 있다.
 이 불상이 요즘 뜨겁다. 아니 지난 10여 년 계속 달아올랐다. 소유권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대립해 왔다. 그간 두 차례 소송이 있었는데 1심에선 한국의 손을, 2심에선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까지 아직 상당 시간이 남아 있지만 양국의 자존심, 외교력과 국제법까지 걸친 사안이라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일본에 건너간 불상 훔쳐와 논란
소유권 놓고 1, 2심 판결 뒤집혀
절도과 환수 사이, 자존심 지켜야

 가장 큰 문제는 이 불상이 한국인이 일본에서 훔쳐 온 문화재라는 데 있다. 2012년 10월 한국인 넷이 쓰시마 관음사에 소장된 불상을 절취해 부산으로 밀반입하려다 적발됐다. 한마디로 장물에 해당한다. 이후 양상이 복잡해졌다. 충남 서산 부석사 측이 원래 소유권을 주장하며 2016년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951년 일본 사찰 측이 불상 복장(腹藏) 유물에서 발견한 ‘1330년 고려 서주(서산) 부석사에서 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결연문을 근거로 들었다. 왜구가 약탈해 갔다고 주장했고, 1심 재판부도 이를 받아들였다.
 지난 1일 2심의 판단은 달랐다. 700년 전 고려 부석사와 현재 부석사를 같은 사찰로 볼 수 없고, 왜구가 훔쳐 간 정황은 있지만 관음사가 양국 민법과 국제법 기준인 20년 이상 점유해 왔다는 점을 들어 일본 측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2심에 대한 반응도 대비된다. 한국 조계종은 “약탈 문화재에 대한 면죄부를 준, (문화재 반환의) 가장 나쁜 선례를 제공한 몰역사적 판결”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반면에 일본 언론은 “한·일 관계 개선의 흐름을 뒷받침” “양국 관계 개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사태는 피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한데 모두 ‘팩트’에 어긋난다. 우리로선 못내 아쉽지만 왜구가 불상을 앗아갔다는 사료를 아직 찾지 못했다. 일본 언론의 해석도 제 논에 물대기일 뿐이다. 고려 불상과 강제징용 사이엔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다. 2심 재판부도 “민사소송은 소유권 귀속을 판단할 뿐이다. 한국 정부는 국제법 이념·협약 등을 고려해 불상 반환 문제를 다룰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특히 일본의 반응이 군색하다. 2015년 군함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최근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재추진 결정 과정에서 지워버린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 상황이 아닌가. 또 신년 외교연설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10년째 되뇌고 있다. 이번 판결이 “‘반일 무죄’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요미우리)는 평가는 되레 사태를 왜곡할 뿐이다.
 우리도 더욱 의연할 필요가 있다. 문화재 환수는 복잡하고 미묘한 이슈다. 이번 불상은 ‘훔쳐 간(추정) 물건을 다시 훔쳐 온 물건’이라는 미증유의 일이라 치밀한 접근이 필요하다. 문화재 환수에선 불법·부당 반출을 입증하는 자료 확보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절대 감정으로 풀어갈 사안이 아니다. 약탈 사실을 먼저 입증하고, 국제법 절차에 따라 소유권을 돌려받는 게 문화국가의 품격이요, 글로벌 스탠더드다.
 향후 대법원 판결을 예단할 순 없다. 다만 “원래 우리 것”이란 목마른 논리만 앞세우면 명분과 실리를 다 잃을 수 있다. 설혹 불상을 일본에 되넘겨준다 해도 고려 불상이 일본 불상으로 둔갑할 순 없다. 마음 상할 판결, 일희일비할 사건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문적 고증과 외교적 대응, 국제적 공감이란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그게 바로 K컬처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이다. ‘현세에서는 재액을 없애 복을 받고 후세에서는 함께 극락에 태어나기를 바랍니다’라는 불상 발원문을 반추해 본다. 불법(佛法)과 불법(不法)은 전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