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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희의 미래를 묻다

지구 살린다는 대체육, 미래 육류시장 대세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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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육류의 미래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십대인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자 다섯 가족의 식단을 책임지는 이로서 매번 장바구니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고기다. 개성만큼이나 식성도 다양한 입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데는 치킨·스테이크·삼겹살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렇게 장바구니에 각종 ‘남의 살’들을 넣었다. 언제부터 고기를 좋아했을까. 우리는 원초적으로 고기를 좋아하는 본능을 타고난 것일까.

고기에 길들여지고 탐닉하는 인류

인류학자들은 인간이 지금처럼 진화하는 데 육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로 숲이 사라지고 나무열매가 줄어들자 굶주리게 된 인류의 조상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찾았다. 그 중 하나가 육식동물이 사냥하고 먹다 남긴 동물의 뼈였다. 그들은 돌을 들어 뼈를 깨고 골수를 취했다. 골수는 지방 성분이 80%에 달하는 고칼로리 식품인 동시에 혈액을 생성하는 조혈기관이어서 철분·인 등의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다. 단단한 뼈조직에 둘러싸여 있어서 잘 상하지도 않는다. 2019년 이스라엘 연구진들은 부서지지 않은 뼈 속의 골수는 최대 9주간이나 상하지 않은 상태로 보관이 가능함을 증명한 바 있다.

고기류 좋아하도록 진화한 인류
비만, 환경오염, 윤리문제 등 수반
식물성 대체육, 맛·식감서 아쉬움
배양육은 아직 기술적 난제 많아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서 실험실에서 만든 치킨 너겟을 메뉴로 내놓고 있다. 싱가포르는 모든 대체육 판매를 허용한 최초의 국가다. [AFP=연합뉴스]

싱가포르의 한 식당에서 실험실에서 만든 치킨 너겟을 메뉴로 내놓고 있다. 싱가포르는 모든 대체육 판매를 허용한 최초의 국가다. [AFP=연합뉴스]

초기 인류는 이처럼 다른 동물들의 ‘등골을 뽑아’ 생존하며 인류로 진화하는 바탕을 마련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했던 육식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갔다. 생존과 번식에 필요한 것이라면 이를 선호하는 경향을 진화시키는 자연의 손에 의해 인류는 점차 고기에 길들여지고 탐닉하게 되었으리라.

이렇게 인류가 고기를 좋아하게 된 것과는 별개로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 꼭 고기를 먹어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현대인들에게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열량 및 지방의 과다 섭취, 식량 수급 문제, 대규모 공장식 축산으로 인한 환경오염, 생물다양성의 훼손, 윤리적 문제까지. 하지만 그 많은 이유에도 불구하고 고기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강렬하다. 본능까지 없애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을 돌렸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고기 맛을 재현해내는 식물성 대체육이다. 얻기도 쉽고 윤리적 논란도 없지만, 시장의 평가는 애매하다. 눈과 혀는 그럴 듯하게 속여도 뇌까지 믿게 하기에는 2%쯤 부족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식물성 대체육 대신 배양육 주목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족 못 한 이들이 눈을 돌린 것이 배양육이다. 소 한 마리를 도축해서 얻을 수 있는 고기의 양은 전체 체중의  4분의 1 정도다. 사람들이 선호 및 소비 대상이 근섬유로 구성된 부위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의 근육세포를 추출해 시험관 속에서 배양한다면 등심, 안심, 제비추리 등을 부위별로 자라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양육은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껏 붉은 살코기를 즐길 수 있는 훌륭한 대안처럼 보인다. 게다가 전통적인 육류생산에 비해 지구 온난화나 환경 오염에 미치는 영향을 10분의 1로 줄일 수 있고, 현대 축산농지의 5%만 있어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

배양육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그 과정은 얼핏 단순해 보인다. 동물의 근육 세포를 소량 추출해 영양분이 풍부한 배양액을 담은 멸균 용기에 넣는 것이다. 세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분열하면서 고기가 자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처럼 수월하진 않다. 대개의 정상 세포들은 일정 횟수만큼 분열하고 나면 더 분열하지 않고 사멸하는 ‘헤이플릭 한계’를 가지고 있다. 배양육을 구성하는 세포도 마찬가지다. 배양육을 제대로 기르기 위해서는 ‘시드 미트(seed meat)’가 될 세포를 주기적으로 공급해주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세포주(cell line) 사용이다. 세포주란 세포에 일종의 돌연변이가 일어나 분열을 무한대로 하는 세포를 말한다. 하지만 세포주는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결국 돌연변이 세포다. 안전성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약점을 지닌다.

아직 난제 수두룩한 대체육

세포 분열 제한을 해결해도 문제는 남는다. 근육세포들은 지지체에 달라붙어야만 자라는 특성이 있다. 용기 바닥에만 얇게 층을 이룰 뿐 좀처럼 두꺼워지지 않는다. 배양육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세포들이 많이 달라붙을 수 있도록 표면적이 넓게 디자인된 특수한 형태의 지지체를 추가적으로 넣어주어야 한다. 그 경우, 배양육 회수를 위해서는 지지체를 일일이 제거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추가된다. 이에 아예 지지체를 먹을 수 있는 재료(콩단백질 등)로 만들어 제거할 필요를 없애거나, 애초부터 부유해서 자라는 다른 세포들로 대치하기도 한다. 배양육의 수율을 높이기 위해 배양 용기와 지지체, 배양 방법에 대한 답안은 여전히 모색 중이다.

글로벌 육류시장 전망

글로벌 육류시장 전망

더 큰 문제가 있다. 배양액 문제다. 배양액은 세포를 키우는 용액, 다시 말해 세포의 먹거리다. 지금까지는 배양액으로 반드시 ‘소 태아혈청(fetal bovine serum, FBS)’을 사용했다. 소 태아혈청은 도축시 부산물로 발생하는 사산된 태아의 혈액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영양분과 세포 성장인자가 풍부해서 배양을 수월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가격이 매우 비싸(500L에 약 150만원) 경제성이 없다. 2013년 등장한 최초의 배양육 햄버거에 들어간 패티 한 장의 개발 비용이 약 25만 유로(약 3억3000만원)에 달한 이유 중 하나도 FBS의 비용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기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일을 막고자 배양육에 눈을 돌렸으면서, 그 배양육을 기르기 위해 소 태아를 이용하는 것은 모순적이다. 이런 모순은 FBS을 이용하지 않는 무혈청 배지로 배양육을 기르는 방법을 찾아내게 만들었다. 더 큰 문제는 배양액 자체의 안전성이다. 배양액은 배양육 세포뿐만 아니라 다른 미생물에게도 탐나는 먹거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비용의 완전 무균 배양 시스템을 갖춰야 하거나, 배양액에 항생제를 추가해야 한다.

현재 전세계에서 대체육 시장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나라는 싱가포르다. 현재까지 식물성 대체육, 동물세포를 이용한 배양육, 미생물에 양분을 공급해 단백질을 만드는 발효육까지 모든 종류의 대체육을 허용한 유일한 국가다. 도시국가의 특성상 식량의 9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불안정한 식량 수급 사정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SF영화 속에도 등장하는 배양육

영화 ‘마션’으로 유명한 소설가 앤디 위어의 2021년 소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주인공이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서 외계인과 조우해 우정을 키워나간다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우여곡절 끝에 외계인의 행성에 도착하지만, 그곳에서는 그가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없다. 이미 너무 멀리 와서 지구로 돌아갈 수 없는 주인공은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고도의 과학 기술을 갖춘 친절한 외계인들이 이를 두고 볼 리 없다. 주인공의 몸에서 세포를 채취해 이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의 세포로 만들어진 ‘제살버거’를 먹으며 외계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스스로 먹거리이면서 먹는 자가 되는 ‘독립영양생물’이 된 것이다.

여기까지는 소설 속 허구다. 하지만 배양육 기술이 등장하자 여러 ‘셀럽’들의 세포로 배양육을 만들어 판다는 회사가 실제로 등장한 적이 있다. 해당 회사의 웹사이트는 현재 문을 닫았지만, 인간의 갈망이 법적 혹은 윤리적 제약 없이 과학기술과 만났을 때 그 한계가 어디까지일지 생각하게 만든 해프닝이었다.

인류가 배양육을 생각해 낸 데에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다른 생명을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원초적 최책감을 덜기 위한 윤리적 고려도 있었을 것이었다. 배양육이 효율성과 쾌락, 경제성과 윤리성, 기술 발전과 인간 정체성 사이 중간 쯤에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더많은 생각과 합의가 필요하다.

◆이은희=연세대에서 생물학을, 고려대에서 과학언론학을 공부했다. 과학책방 갈다 이사로 일하면서, 과학을 알리고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다.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바이오사이언스』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은 인도 신화에서 따왔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