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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국 ‘정찰풍선’ 격추…미·중관계 급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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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서 격추되는 중국 ‘정찰위성’. 미 국방부는 F-22 전투기가 공대공 미사일로 풍선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이 풍선이 기상 관측용 비행선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국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서 격추되는 중국 ‘정찰위성’. 미 국방부는 F-22 전투기가 공대공 미사일로 풍선을 격추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이 풍선이 기상 관측용 비행선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대륙을 동남 방향으로 횡단한 중국 ‘정찰 풍선’이 4일(현지시간) 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영공에서 격추됐다. 미국 국방부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 전투기 F-22 랩터와 구축함 등 군 자산을 동원해 작전을 폈고, 가라앉은 풍선 잔해와 정찰 정보 수거작업에 들어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출발 몇 시간 전 방중을 전격 취소한 데 이어 중국이 미국의 풍선 격추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양국 관계가 얼어붙고 있다. 미 국방부는 또 다른 중국 ‘정찰 풍선’이 중남미 상공을 통과 중이라고 밝혔다.

격추 전 풍선. [AP=연합뉴스]

격추 전 풍선. [AP=연합뉴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F-22 전투기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앞바다 상공에서 중국 ‘정찰 풍선’을 격추했다고 말했다. 버지니아주 랭글리 공군기지에서 출격한 랩터는 이날 오후 2시39분쯤 17.8㎞ 상공에서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AIM-9X 사이드와인더 한 발을 쏴 18.9㎞ 상공에 있던 풍선을 명중했다.

작전에 참여한 랩터 콜사인(무선호출 부호) 프랭크1과 프랭크2는 1차대전 당시 독일 정찰 풍선 14개를 격추한 프랭크 루크 주니어 육군 항공대 중위 이름에서 따왔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미 국방 전문매체 디펜스원은 보도했다. 작전에는 매사추세츠주 방위군 소속 F-15 전투기와 오리건·몬태나 등에서 출격한 공중급유기가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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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해군 구축함, 순양함, 상륙선거함이 잔해 수거를 위해 대기했다. 작전에 앞서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주 공항 세 곳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중단됐다. 인명이나 항공기·선박 피해는 없다는 게 국방부 평가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풍선과 그에 장착된 고해상도 카메라 등 스쿨버스 3대 크기(폭 36m)의 장치는 약 5분간 낙하해 미국 영해에 떨어졌다. 잔해는 수심 14m 깊이 바닷속 약 13㎞에 걸쳐 흩어져 있다. 정찰 장비가 수거되면 버지니아주 콴티코 연방수사국(FBI) 연구소로 보내 수사를 시작한다. 미 당국은 중국이 수집한 정보와 정찰 기술력을 파악하고 5개 대륙에 걸쳐 발견된 중국 정찰 풍선 함대를 연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중국은 이 풍선이 기상 관측용 비행선이라며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는 5일 성명을 내고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 민간용 무인 비행선을 공격한 데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고 발표했다. 성명은 “중국이 이미 조사한 뒤 여러 차례 미국에 해당 비행선은 민간용이며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미국에 진입한 완전한 의외의 사건이라고 알렸다”면서 “미국이 의도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것은 지나친 대응이자 엄중한 국제관례 위반”이라고 비난했다. 또 “중국은 관련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며, 동시에 한층 더 필요한 대응을 취할 권리를 가졌다”며 보복을 시사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미 국방부는 일주일 전 중국 ‘정찰 풍선’이 영공에 진입하기 전부터 존재를 인지하고 추적해 왔다고 밝혔다. 풍선은 지난달 28일 알래스카주 서쪽 끝에 있는 알류샨 열도에서 미국 영공에 진입했다. 지난달 30일 캐나다 서남부 영공을 지나 31일 미국 아이다호주로 넘어왔다. 이후 몬태나·미주리·노스캐롤라이나주를 거쳐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머틀비치 인근에서 대서양 상공으로 빠져나간 직후 작전이 이뤄졌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중국 ‘정찰 풍선’이 민감한 시설이 있는 지역을 훑고 지나가면서 미국에선 정보 노출 우려가 나온다. 풍선이 육안으로 목격된 몬태나주에는 핵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미니트맨3 150기가 지하 사일로(고정식 발사장치)에 설치된 말름스트롬 공군기지 등 군사시설이 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풍선이) 미국의 전략적 입지를 감시하기 위해” 사용됐다고 봤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4일 “수요일(2월 1일) 풍선에 대해 보고받을 때 국방부에 가능한 한 빨리 풍선을 격추하라고 명령했다”면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하기에 가장 좋은 시점은 바다로 빠져나간 뒤 12마일(32㎞) 이내 지점에 있을 때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6년 만의 미 국무장관 방중을 앞두고 왜 이 같은 일을 벌였는지 의문으로 남는다. 블링컨 장관은 5~6일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왕이(王毅) 중국공산당 정치국 위원을 만날 계획이었다. 덩위원(鄧聿文) 재미 시사평론가는 “최근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미국에 불만을 품은 채 블링컨의 방중을 원하지 않는 베이징 내부의 압력이 존재한다”며 “중국 외교부가 3일까지 블링컨 방중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말했다. 중국 내 강경파가 미·중 대화 사보타주를 위해 풍선 사건을 유발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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