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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관치냐 견제냐…인사부터 금리까지 개입해 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최근 금융당국의 시장 개입을 놓고 관치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주요 금융그룹 회장 인사에서부터 은행의 금리 조정까지, 개별 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해야 할 문제에 정부 개입이 지나치다는 비판이다. 다만 정부는 은행은 공공재인 만큼 일정 수위의 견제는 필요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연임 반대 후, 관료 출신 임종룡 낙점 논란

3일 우리금융 임원추천위원회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최종 낙점했다. 사진은 임종룡 전 위원장. 연합뉴스

3일 우리금융 임원추천위원회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을 차기 회장 후보로 최종 낙점했다. 사진은 임종룡 전 위원장. 연합뉴스

우리금융그룹 차기 회장에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낙점되면서 관치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우리금융은 지난 3일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임 전 위원장을 단독 회장 후보로 정했다. 주주총회를 통과하면 회장으로 최종 선정된다.

최근 금융당국은 우리금융 회장 선출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원래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3연임이 유력했다. 하지만 라임 사태와 관련해 1년 6개월가량 징계를 미뤘던 금융당국이 갑자기 손 전 회장에게 중징계(문책경고)를 결정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중징계 결정이 내려진 후인 지난해 11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당사자(손 전 회장)께서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리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사실상 연임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12월 “손 회장에 라임 펀드 책임이 명확하게 있다”고 압박했다.

결국 손 전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임 전 위원장이 후보로 선출되자 정부에 우호적인 관료 출신을 앉히기 위해 일부러 손 전 회장을 밀어냈다는 비판이 나왔다. 임 전 위원장은 행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해 옛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기획재정부 1차관, 금융위원장 등을 거친 정통 관료 출신이다. 지난달 25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과 우리금융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어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를 이룬 우리금융이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올드보이의 놀이터로 전락할까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3곳 중 2곳 관료 출신으로 교체…“지배구조 바꿀 것”

우리금융뿐만이 아니다. 최근 5대 금융그룹 중 윤 정부 이후 교체가 확정된 곳은 3곳(신한·NH농협·우리)이다. 이 중 전직 관료 출신으로 회장 교체가 확정된 곳은 2곳(NH농협·우리)이다. 신한금융도 3연임을 예상했던 조용병 전 회장이 연임을 포기하고, 진옥동 신한은행장이 후임으로 낙점되면서 정부와 사전 교감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정부는 단순한 인사 개입을 넘어 주요 금융사의 지배구조까지 손대겠다는 입장이다. 주인이 없는 금융그룹에서 회장이 권한을 독점해 장기간 연임하는 문화를 바꾸겠다는 취지다. 실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금융위 업무보고에서 “소유가 분산돼서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그 절차와 방식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도 “주인이 없고 굉장히 중요한 그룹의 기업 후계자 승계 문제나 선임 절차 과정이 과연 투명하고 합리적이냐는 것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선을 시사했다.

금융당국, 금리 개입 놓고도 뒷말

30일 오전 9시15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안 한 은행에서 고객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임성빈 기자

30일 오전 9시15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 안 한 은행에서 고객이 업무를 보고 있다. 임성빈 기자

인사 외에도 금리 등 은행의 고유 권한에 금융당국의 개입이 지나치게 잦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 후 채권시장 유동성 문제가 불거지자, 금융위는 은행권에 은행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이로 인해 예금 외에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막히자, 시중 은행들은 경쟁적으로 예금금리를 올렸다.

은행권의 예금금리 인상에 역마진 우려가 커진 제2금융권이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취약계층 피해로 이어졌다. 취약계층 대출이 막힌다는 비판이 나오자 반대로 금융위는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을 자제하라”고 은행권에 요청했다. 이 영향에 예금금리가 낮아지고, 대출금리만 다시 오르자 이번엔 금감원장이 직접 나서 “대출금리를 낮춰라”고 압박했다. 오락가락 금융당국의 개입이 시장 혼선을 더 키운 것이다.

관치 불만에 주주 행동도…“적절한 견제 필요”

일부 주주 사이에서는 금융당국의 지나친 개입이 금융사 주가 저평가의 원인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제 주주 행동주의(주주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이익을 추구하는 것)를 표방한 한 사모펀드는 최근 주요 금융그룹의 배당성향을 높이지 않으면, 주주총회에 배당 확대를 안건으로 상정하겠다고 선언해 화제를 모았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이 불거졌던 지난 2020년에 은행권 위험을 줄이겠다며 배당 자제를 요청한 바 있다.

다만 정부는 금융권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금융당국 한 고위 관계자는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 자정 노력을 갖추는 것”이라며 “이것이 안되는 상황에서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금융당국이 손을 놓고만 있을 순 없다”고 했다.

김정식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은행이 법에 따라서 자율권을 가지고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다만 현재 은행은 과점 상태이기 때문에, 마냥 자율에 맡길 수 없고 어느 정도 정부의 견제가 필요한 측면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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