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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 풍선' 공세 전환한 中…"대응할 권리 가졌다" 보복 경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4일(현지시간) 미 공부 노스캐롤라이나주 동부 대서양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 공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고 있다. A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미 공부 노스캐롤라이나주 동부 대서양 상공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이 미 공군의 미사일을 맞고 격추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의 본토 상공을 횡단한 중국의 ‘정찰 풍선’을 이유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5일로 예정됐던 중국 방문을 연기한 데 이어 중국이 이 풍선을 미사일로 격추한 미국을 강하게 비난하면서 미·중 양국이 정면충돌했다.

미 국방부가 정찰 풍선의 존재를 발표한 초기에는 사태 수습에 집중하는 듯했던 중국은 풍선이 격추된 것을 계기로 공세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잔해물 수거 이후 예상되는 미국 의회와 군부, 여론의 공세에 맞서 중국 정부는 강 대 강 대치를 예고했다. 미·중 모두 강경론이 득세하면서 양국 정부 일각에서 추진돼 온 대화 노력은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 헤이거즈타운 공항에서 중국 정찰 풍선 격추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메릴랜드 헤이거즈타운 공항에서 중국 정찰 풍선 격추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은 5일 오전 외교부 성명을 내고 “미국이 무력을 사용해 민간용 무인 비행선(民用無人飛艇, 영문 civilian unmanned airship)을 공격한 데 강한 불만과 항의를 표시한다”고 발표했다. 대변인 발언(Remarks)보다 수위가 높은 외교부 성명(Statement)은 중국이 지난해 8월 2일 낸시 펠로시 당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항의하며 발표한 이후 처음이다.

중국 외교부는 성명을 통해 “중국이 이미 조사를 한 뒤 여러 차례 미국에 해당 비행선은 민간용이며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미국에 진입한 완전한 의외의 사건이라고 알렸다”면서 “미국이 의도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것은 지나친 대응이자 엄중한 국제관례 위반”이라고 공격했다. 또 “중국은 관련 기업의 정당한 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며 동시에 한층 더 필요한 대응을 취할 권리를 가졌다”고 강조했다. 중국 특유의 외교용어에서 “가일층 대응할 권리를 가졌다”는 표현은 향후 보복을 취할 수 있다는 경고의 뜻으로 해석된다.

중국 국방부도 나섰다. 탄커페이(譚克非)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오후 “미국이 무력을 동원해 민간 무인비행선을 공격한 것은 분명 과도한 대응”이라며 “미국에 엄정한 항의를 표하며 필요한 수단을 사용해 비슷한 상황을 처리하는 권리를 갖는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이날 오전 외교부가 보복 가능성을 암시한 성명과 같은 맥락이다.

왕이(오른쪽) 중국 정치국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이 지난 2일 베이징을 방문한 처버 커러쉬 77차 유엔 총회 의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캡쳐

왕이(오른쪽) 중국 정치국위원 겸 중앙외사공작위원회판공실 주임이 지난 2일 베이징을 방문한 처버 커러쉬 77차 유엔 총회 의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캡쳐

정찰 풍선 국면에서 중국은 빠른 속도로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했다. 지난 3일 오후 정례 브리핑에서 마오닝(毛寧)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관련 보도에 주의한다. 조사·확인 중”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표하는 데 그쳤다. 이어 같은 날 오후 9시 넘어 대변인 발언을 통해 “중국의 무인비행선이 미국에 잘못 진입한 데 유감(regret)을 표한다”고 했다. 다만 “민간의 기상 등 과학 연구용이고 불가항력적인 이유로 일어난 의외의 사건”이라며 정찰용 풍선이란 시각에 선을 그었다.

중국은 4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王毅) 정치국 위원의 통화가 끝난 이후 외교부 대변인 발언과 보도자료를 연거푸 내면서 반전의 기회를 찾았다. 먼저 “중국을 먹칠하는 데 결연히 반대한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 연기는) 미국의 사정”이라며 외교부 대변인 발언을 발표했다. 블링컨 장관의 방중이 아직 양국의 공식 발표 전이라는 이유로 연기 책임을 회피했다. 왕이 정치국 위원 역시 “근거 없는 억측과 자작극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 5일 오전 미군의 정찰 풍선 격추 소식에 중국은 “대응할 권리가 있다”며 보복을 예고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정찰 풍선을 둘러싼 양국 충돌의 배경에 중국 내 강경파의 대화 사보타주 가능성도 제기된다. 덩위원(鄧聿文) 재미 시사평론가는 “최근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는 미국에 불만을 품은 가운데 블링컨의 방중을 원하지 않는 베이징 내부의 압력이 존재한다”며 “중국 외교부가 3일까지 블링컨 방중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의회의 대중 강경론에 못지않게 중국 군부 내 강경파가 반발했을 가능성도 있다. 미·중 대화에 불만을 품은 군내 강경파가 스스로 행동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5일 보도했다. 2011년 당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 군부는 스텔스기를 시험 비행하며 후진타오 당시 주석을 당혹하게 했으며, 2014년 9월 시진핑 주석의 인도 방문 직전에는 중국 군부가 중국·인도 국경 분쟁 지역을 침입했던 선례가 있다.

이번 정찰 풍선 충돌로 미·중이 대화 국면으로 되돌아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스인훙(時殷弘) 인민대 국제관계학 교수는 “미·중 간 갈수록 악화되는 관계가 이제 한차례 보통 타격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해졌다”며 “미·중 관계에서 ‘현저하고 장기적인 개선’을 거두려면 거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야 할 정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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