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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느냐, 떠나느냐…서튼-수베로 감독의 ‘동상이몽’

중앙일보

입력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왼쪽)과 롯데 래리 서튼 감독이 2021년 5월 19일 대전 경기를 앞두고 각자 준비한 선물을 교환했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한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왼쪽)과 롯데 래리 서튼 감독이 2021년 5월 19일 대전 경기를 앞두고 각자 준비한 선물을 교환했다. 사진 롯데 자이언츠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외국인 사령탑의 역사가 길지 않다. 보수적인 문화가 오래 지속되면서 20년 넘게 국내 감독들에게만 지휘봉이 주어졌다. 간간이 외국인 코치는 얼굴을 비쳤지만, 감독의 자리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러나 2008년 제리 로이스터(71·미국) 감독의 등장으로 물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매년 최하위권으로 맴돌던 롯데 자이언츠를 3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면서다. 로이스터 감독은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성공 신화를 썼고, 이는 로이스터 신드롬으로 퍼져나갔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8년에는 SK 와이번스 트레이 힐만(60·미국) 감독이 명맥을 이었다. 외국인 최초의 한국시리즈(KS) 우승 사령탑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이렇게 외국인 카드가 성공 보증수표로 통하자 각 구단의 시야도 넓어지게 됐다. 차기 수장을 물색할 때 해외 지도자로까지 후보군을 넓혔다. 그렇게 KBO리그 건너온 이가 현재 롯데와 한화 이글스를 지휘하고 있는 래리 서튼(53·미국) 감독과 카를로스 수베로(51·베네수엘라) 감독이다.

지난 2년간 우여곡절을 겪은 서튼과 수베로, 두 사령탑이 ‘배수의 진’을 펼쳐놓고 올 시즌을 맞이한다. 모두 계약 만료를 앞뒀다는 점에서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지난해 롯데와 한화는 모두 아쉬움 속에서 페넌트레이스를 마무리했다. 롯데는 4월 상승세를 앞세워 2위까지 치고 올라갔지만, 뒷심 부족으로 8위까지 내려앉았다. 한화 역시 마찬가지. 전력의 한계를 체감하며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했다.

또 한 번 실패를 맛본 롯데와 한화는 다른 하위권 구단과는 선택을 달리했다. 6위 NC 다이노스와 7위 삼성 라이온즈, 9위 두산 베어스 모두 수장을 교체했지만, 롯데와 한화만큼은 두 감독을 더 믿어보기로 했다.

지난 스토브리그에선 전폭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지갑을 활짝 열고 FA 선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롯데는 유강남(4년 80억 원)과 노진혁(4년 50억 원), 한현희(3+1년 40억 원)를, 한화는 채은성(6년 90억 원)과 이태양(4년 25억 원), 오선진(1+1년 4억 원)을 데려와 부족한 곳을 채웠다.

모기업의 통 큰 투자는 두 감독에겐 선물이자 부담으로 다가오는 분위기다. 전력 보강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지만, 그만큼 현장 지도자의 책임감은 커지기 때문이다. 올 시즌이면 계약 기간이 끝나는 서튼 감독과 수베로 감독 역시 이를 모를 리 없다. 구단의 눈높이를 채우지 못하면 재계약을 장담할 수 없다.

벼랑 끝 레이스를 앞둔 두 사령탑의 발자취도 흥미를 더한다. 서튼 감독과 수베로 감독은 같은 외국인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외야수 출신의 서튼 감독은 선수로서는 나름대로의 성적을 남겼다. 1992년 캔자시스티 로열스로부터 지명된 뒤 1997년 메이저리그 무대로 데뷔해 2004년까지 252경기 타율 0.236 12홈런 78타점 63득점을 기록했다. 또, 2005년 건너온 KBO리그에선 뒤늦게 전성기를 꽃피우기도 했다.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35홈런 102타점을 터뜨려 홈런왕과 타점왕,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함께 차지했다.

이와 반대로 선수 수베로는 뚜렷한 발자취는 남기지 못했다. 1990년 캔자스시티 입단 후 1995년까지 마이너리그에서만 내야수로 뛰다가 은퇴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는 먼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서튼 감독은 은퇴 후 마이너리그 타격코치로만 일했지만, 수베로 감독은 2001년 텍사스 레인저스 루키팀 코치를 시작으로 여러 구단에서 수비코치와 감독을 맡았다. 또, 2019년 열린 프리미어12에선 조국 베네수엘라 지휘봉을 잡기도 했다.

서로 이렇다 할 접점 없이 달려온 두 사령탑. 그러나 올 시즌만큼은 처지가 같다. 서튼 감독은 가을야구 진출을, 수베로 감독은 중하위권 도약을 목표로 생존 싸움을 벌여야 한다. 남느냐 떠나느냐, 운명의 전력질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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