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재명-김영철 연결한 브로커…'대북 송금' 안부수 미스터리

중앙일보

입력

‘800만 달러+α’
 지난 3일 구속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공소장에 적힌 대북송금 규모다. 김 전 회장은 이 돈 대부분을 ‘쪼개기’ 방식의 밀반출해 북측 고위층에 전달했다.

재벌도 아닌 조폭·사채업자 출신 기업인의 이런 과감한 시도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해빙 무드, 유력 대선주자라는 정치적 뒷배 외에도 다양한 환경과 조력자의 얽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중 하나가 기이할 정도로 북측 인사들과 끈끈한 인맥을 자랑한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이다. 1965년생인 그가 2017년 이전까지 대북 사업과 아무런 관계없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걸 감안하면 어떻게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북한 그리고 김 전 회장을 잇는 키맨이 될 수 있었느냐는 한 편의 미스터리다.

2018년 11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가 경기도 성남 제2판교테크노밸리를 방문한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왼쪽 둘째) 등 북한 대표단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른쪽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아태위는 당시 쌍방울그룹의 대북 사업 창구였다. 뉴스1.

2018년 11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가 경기도 성남 제2판교테크노밸리를 방문한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왼쪽 둘째) 등 북한 대표단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른쪽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아태위는 당시 쌍방울그룹의 대북 사업 창구였다. 뉴스1.

믿거나 말거나 유해 봉환 올인 20년 

 ‘안부수’란 이름이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봉환 활동을 하는 시민운동가로 처음 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은 2009년 8월이다. “강제 동원 희생자의 유골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아태협은 어찌 됐든 2009~2012년 세 차례 걸쳐 유골 177위를 일본에서 봉환해 경남 양산 천불사 등에 모셨다. 2018년 10월 펴낸 자서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도서출판 아시아)에는 이같은 활동의 출발점이 2004년이라고 적혀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안 회장은 2006년 ‘강제동원 한인 희생자 유골 발굴과 봉환을 위한 한일위원회’를 출범시켰고 이듬해 ‘태평양전쟁 희생자 봉환위원회’로 이름을 바꿔 달았다. 아태협은 2010년 2월 서울시로부터 사단법인 인가를 받은 뒤부터 쓰는 이름이다.

유해 봉환 사업은 지난해 6월30일까지 이어졌다. 일본 야마구치현 소재 신사(神社) 등에 있던 민간인 유골 10위와 위패 28위 등 총 38위를 들여와 충남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이 봉환식을 앞두고 아태협은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행사 참석을 요청했지만 거부당했다. 지원단 관계자는 “아태협이 가져온 유골은 강제동원된 피해자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예우를 최대한 갖춰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고 봉환한다는 봉환의 조건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안 회장 역시 자서전에 “우리 정부도 이 일은 정부 간에 진행하는 일이니 나서지 말라고 했다. 정부가 이 일을 잘해 왔다면 왜 보잘것없는 개인이 뛰어들었겠는가”라고 썼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2012년 유해봉환 사업 당시 촬영된 사진. 안부수 회장 자서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재가공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2012년 유해봉환 사업 당시 촬영된 사진. 안부수 회장 자서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재가공

 자서전에도 2004년 이전의 개인사는 “유복자나 다름없이 자라난 나는 젊은 날에 거친 방황의 길을 걷기도 했고, 삼십대에는 사업을 해서 돈을 좀 벌기는 했지만, 이런저런 세파를 겪으며 돈이 인생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고 언급된 게 전부다. 경북 포항 출신이라는 것만 밝혔을 뿐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조차 알리지 않았다.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경기도와 아태협이 주최한 2차 아태평화국제대회 때 소개한 암호화폐 ‘APP코인’ 백서에 적은 약력에 ‘요코하마국립대 경제법 연구학’이라고 표기했지만, 전 아태협 관계자는 “정상적인 학력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자서전에 유해 봉환 사업의 동기로 ‘후쿠시마 탄광 노동자로 끌려갔던 아버지’를 언급했지만, 이 역시 사실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이 지난 2018년 11월14일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자료 사진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이 지난 2018년 11월14일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서 대회사를 하고 있다. 자료 사진

2017년 대북 사업으로 급회전…“김영철이 픽”

 안 회장이 대북사업 브로커로 나선 시점을 검찰은 2017년 8월 아태협의 등기상 설립 목적을 ‘아시아-태평양의 평화와 공존을 바탕으로 국제간의 민간교류’로 변경한 뒤로 보고 있다. 당시 경기도와 쌍방울의 대북사업을 잘 아는 복수의 인사는 “이화영 부지사와 김성태 회장에게 안 회장을 통하라고 지정한 게 김영철 조선아태위 위원장”이라고 말한다. 김영철은 2018년 10월 전후 김 전 회장과 이 전 부지사에게 “사업 관련 문제는 안 회장을 통해 상의하라”고 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김영철은 인민군 정찰총국장 출신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1월 방중 수행단으로 첫 번째로 호명한 인물로 한때 북한 최고위급 인사였다. 김 전 회장이 2019년 1월 쌍방울 신당동 사옥에 아태협 사무실을 내준 것도 그 결과라는 게 사정을 아는 이들의 설명이다.

 김영철·이종혁·김성혜·송명철 등 조선아태위 관계자들의 안 회장에 대한 신임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 아태협 관계자는 “이종혁 부위원장이 안 회장을 애국자라고 부르는 걸 본 적이 있다”며 “유골 봉환 사업 등이 과대 포장돼 북측 인사들은 그를 반일운동가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 등이 지난 2018년 11월14일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해 기념촬영하고 있다. 자료 사진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 회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 등이 지난 2018년 11월14일 고양시 엠블호텔에서 열린 '2018 아시아태평양의 평화 번영을 위한 국제대회'에 참석해 기념촬영하고 있다. 자료 사진

단둥 조선족 큰손의 '인우보증' 

 안 회장은 어떻게 북측 인사들의 총애를 받게 됐을까. 전 아태협 관계자는 “한 중국 교포의 소개로 알게 된 중국 단둥 무역업계 큰손인 박모씨가 북측에 안 회장에 대한 인우보증을 선 게 계기”라고 말했다. 무역으로 큰 돈을 번 조선족인 박씨는 단둥과 신의주를 잇는 중조우의교 인근에 3성급 호텔을 소유하는 등 ‘단둥의 3대 부자’로 꼽히는 인물이라고 한다. 2019년 5월 김 전 회장과 배상윤 KH그룹 회장, 이 전 부지사 등이 북측 인사들을 만난 곳도 바로 박씨의 호텔이었다. 박씨는 2018년 11월 고양시에서 열린 경기도 주최 제1회 아태평화국제대회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경기도 남북교류협력기금 사업으로 아태협이 진행한 북한 묘목 지원 사업. 단둥의 한 묘목장에서 북한에 보낼 묘목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모습. 자료 사진

경기도 남북교류협력기금 사업으로 아태협이 진행한 북한 묘목 지원 사업. 단둥의 한 묘목장에서 북한에 보낼 묘목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모습. 자료 사진

 박씨가 안 회장에게 처음 소개한 인사는 북측 대남공작기관 국가보위성 소속 이호남이었다. 안 회장은 박씨와 이호남과 의형제를 맞은 뒤 김성혜 실장부터 김영철 위원장까지 아태위 관계자들과의 관계를 일사천리로 풀어나갔다. 아태협이 2019년 6월부터 경기도 남북협력기금을 지원받아 진행한 어린이 급식용 밀가루 지원과 묘목 지원 사업에도 박씨가 등장한다. 박씨는 밀가루 지원 사업 초기 300t의 구매 대행을 맡았고 묘목 지원엔 본인 소유의 양묘장에 있던 금송 2만5000본을 대기로 했었다고 한다. 전 아태협 관계자는 “박씨를 통해 북측 인사들과 신뢰를 쌓은 뒤부턴 안 회장이 경기도와 쌍방울 측에 본인을 통하지 않으면 사업이 안 될 것처럼 얘기하곤 했다”고 말했다.

김영철

김영철

 검찰 조사 과정에선 2018년 10월 이후 1년여간 경기도·쌍방울·아태협은 한몸으로 움직였다는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경기도는 안 회장을 통해 이재명 지사의 친서와 “방북 허락을 정중히 요청한다”는 공문을 북측에 전달했다. 김 전 회장은 아태협과 경기도가 개최하는 국제대회에 수억원, 경기도가 북측에 약속한 스마트팜 사업비 500만달러, 이재명 경기지사 방북 비용 300만달러 등을 줬다고 진술했다.

 대북 사업이 어그러진 뒤 이들은 ‘이재명 대통령’에 희망을 걸었다. 안 회장은 제20대 대통령선거를 7개월여 앞둔 2021년 7월 말께 아태협 임원과 회원을 주축으로 시민본부를 설립한 뒤 이듬해 1월 아태충청포럼을 창립했다. 대전지검은 “이재명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게 하자”는 등 사전 선거운동을 벌이고 불법 사조직을 만든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안 회장을 지난달 재판에 넘겼다. 김 전 회장의 지인은 “김 전 회장은 대북 사업 무산으로 크게 실망했지만, 대선을 앞둔 이 지사에게 대놓고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었다”며 “이 지사의 대통령 당선에도 적잖은 희망을 걸었다”고 말했다. 안 회장은 불법 대북송금과 경기도 사업 보조금 횡령 등 혐의로 수원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대북 송금의 법적 성격은 구조 상 이 전 부지사에 대한 추가 조사가 진행돼야 윤곽이 나올 것”이라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