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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금 6억 가로챈 경태아부지…"유기견 구조"부터 거짓이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경태아부지' A씨(34)와 반려견 경태와 태희. 사진 인스타그램 캡쳐

'경태아부지' A씨(34)와 반려견 경태와 태희. 사진 인스타그램 캡쳐

“저의 반려견은 올해로 열살 말티즈이고 이름은 경태입니다. 2013년 장마철에 집 앞 주차장 화단에서 온몸에 털이 빠지고 겨우 숨만 붙어 있는 채 발견되었고…” (2021년 1월, 네이트판 글)

[사건추적]

후원금 6억1673만원을 가로채 채무 탕감 등에 쓴 혐의로 최근 실형이 선고된 택배기사 ‘경태아부지’ A씨(34)의 유명세는 이 글에서 시작됐다. A씨가 경태를 차량에 두고 택배를 배송하는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며 학대 의혹이 제기되던 때였다. 이후 유기견을 돌보는 택배기사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면서 경태아부지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약 22만명까지 치솟았다. A씨가 다니던 택배업체는 경태를 명예 택배기사 1호로 임명하기도 했다.

“유기견 출신” 거짓말…경태아부지 SNS도 여자친구가 관리

하지만 모든 건 거짓말이었다. 법원에 따르면 경태는 유기견이 아닌, A씨의 전 여자친구이자 이번 사건의 공범인 김모(39)씨가 2013년부터 길러온 개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김씨와 2018년부터 동거하면서 경태를 같이 기르기 시작했다. A씨 명의로 올라온 위 해명 글 역시 A씨가 아닌 김씨가 작성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유명세를 탄 이후 인스타그램의 게시물 관리 및 팔로워와의 DM(메시지) 등 소통도 피고인 김씨에 의해 주도됐다”고 명시했다.

김씨와 A씨가 지난해 3~4월 불법 후원금 모집 명목으로 내건 “반려견 병원비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는 주장 역시 법원은 허위로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인들은) 개인채무로 인해 경제형편이 어려웠던 상황이었다”며 “(피해자들이) 반려견에 강한 동정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마치 반려견의 병원비로 인해 피고인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는 것처럼 가장해 돈을 빌린 다음 그 돈을 피고인들의 카드대금, 개인 채무 변제 등에 사용할 생각이었다”고 지적했다.

반려견 경태의 모습.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반려견 경태의 모습.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당초 “투명하게 잔고를 공개하겠다”는 약속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1만2808명에게 불법 기부금 6억여원을 모집한 김씨와 A씨에겐 사기와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김씨는 이들에 대한 경찰 수사가 개시된 후인 지난해 4월에도 한 팔로워에게 “A씨가 구속돼 합의금이 필요하다”며 4억8320만원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 등은 수사기관의 눈을 피해 서울 강동구 자택을 떠나 대구 달서구로 도주했지만 이후 관계 악화로 헤어졌고, 지난해 10월 대구에서 나란히 체포됐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씨는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됐다.

“임신했다”며 구속집행정지신청…한 달간 도주

김씨는 임신을 이유로 탈주극을 벌이기도 했다. 김씨가 대구에서 새로 사귄 남자친구 B씨 측은 김씨가 임신 8주차가 지났다며 지난해 11월 법원에 임신중절 수술을 위한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고, 지난해 11월 11일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김씨의 구속집행을 정지했다. 당일 김씨는 수술을 받기로 돼 있었던 대구 달서구 소재의 산부인과에 B씨와 함께 도착했지만 수술받기를 거부했다. 이후 서울로 복귀하던 중 B씨의 차량에 이상이 생기자 충북 청주로 도주했다고 한다. 이튿날 대구로 돌아온 김씨는 B씨 친구 명의의 휴대전화 유심칩과 체크카드 등을 제공받아 한 달간 도피 생활을 이어가다 지난해 12월 다시 검거됐다. B씨는 범인도피 등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A씨의 반려견 경태와 태희. [인스타그램 캡처]

A씨의 반려견 경태와 태희. [인스타그램 캡처]

법원은 “선한 마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악용한 것으로서, 그 죄질이 대단히 불량하다”며 “(김씨는) 최초 범행에 이르게 된 경위, 편취금액의 사용처 및 범행 가담 정도에 관하여 A씨에게 책임을 미루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데, 이러한 피고인의 태도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진지한 반성의 기색을 보이는 것으로 평가하기 어렵다”며 김씨에 징역 7년을 선고했다. A씨 역시 김씨와 공모해 사기 범행을 벌인 혐의가 인정돼 징역 2년이 선고됐다.

이들은 가로챈 돈 대부분을 특정 법인 명의 계좌로 이체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법인들은 폐업했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유령 법인으로, 과거에도 다른 사기 사건 범행에 쓰인 계좌에서 이 법인 계좌로 이체된 사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해당 계좌는) 스포츠 토토 등 인터넷 도박사이트의 도금 계좌”라며 “A씨가 편취 금액을 전부 도박 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다만 A씨는“과거 일부 스포츠 토토를 한 사실은 있으나, 편취 금액으로 도박을 하지는 않았다”며“김씨도 과거 인터넷 도박을 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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