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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너무 빨리 도광양회 버린 중국의 대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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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호 31면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국제정치에서 권력(power)은 경제에서의 돈처럼 핵심 동력이다. 역사상 전쟁과 평화도 각 국가들의 권력 성장과 쇠퇴가 만들어 낸 다이내믹의 결과였다. 지금 많은 전문가들은 2020년대 말까지의 미·중관계가 상당히 위태롭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중국의 힘이 너무 커 가는 것이 위험할까, 아니면 기울어 가는 것이 위험할까? 많은 사람들은 전자가 후자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중국의 힘이 커져 미국을 추월하게 되면 미국은 이를 두려워하게 되고 양국 간에 긴장이 고조되어 결국 충돌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그게 아니라는 반론들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이미 국력의 정점에 와 있고,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는데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국력 쇠퇴를 감지한 시진핑 국가주석이 과거 중국의 성장기에 국민들에게 공언한 대만 통일과 같은 야심적인 목표들을 힘이 더 기울기 전에 달성해 버리려고 모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권위주의 국가 지도자들이 그렇다고 한다. 지난해 출간된 저서 『위험지대: 다가오는 중국과의 충돌』의 두 저자인 할 브랜즈와 마이클 벡클리의 주장이다.

도광양회 대신 유소작위 선택 결과
인구 줄고 부채 심각, 미국에 포위
덩샤오핑 노선으로 돌아가야 해결
전술적 대응보다 대전략 변화 필요

선데이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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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실제로 미국에 도전해 온 상승 대국 중국이 지금 심각한 장애요인들에 직면하고 있다. 중국몽(中國夢)을 추진하는 데 결정적 기반이 되어야 할 국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첫째, 지난 1월 10일 중국 정부는 2022년에 중국 인구가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으로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후 처음 있는 일이다. 앞으로 상당기간 매년 500만~1000만 명씩 노동인구는 감소하고, 같은 규모로 노인인구는 증가할 것이라고 한다. 부자 나라가 되기 전에 노인들의 나라가 되고 있다. 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경제성장률 감소로 연결된다. 이를 만회하려면 노동훈련 강화, 전 산업의 이노베이션과 자동화의 확대가 필요한데, 여기에 투자하려다 보면 대외적 세력 팽창을 위한 군사력 증강에 투자할 재원이 줄 것이다.

둘째, 중국 경제가 저성장 단계로 진입했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의 3%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향후 5~6% 이상 성장하기는 대단히 힘들 것이다. 엄격한 제로코로나 정책이 성장률 저하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부채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 상황에서 수출이 감소하자, 중국의 중앙과 지방정부는 부채를 동원해 인프라 투자 붐을 일으켜 일자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부채는 눈더미처럼 쌓여,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2008년 140%에서 2021년 286%까지 증가했다. 심각한 재정압박 요인이다. 이 과정에서 과잉투자가 이루어져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채무불이행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현재 중국의 비어 있는 아파트들은 프랑스 전체 인구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셋째, 중국이 당면한 국제환경은 가히 최악이다. 해외기업들이 빠져나가고, 유례없는 자본도피가 진행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미국이 동맹들을 동원해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 오커스, 쿼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칩4, 인도태평양-나토 연계 강화 등이 그 사례다. 중국과 달리 수십 개의 동맹국을 가지고 있는 미국이 이를 최대한 활용하여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간 싸움이 경쟁의 핵심인 반도체분야에서 미국과 그 연합 세력의 강력한 제재는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을 상당 기간 늦출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1, 2기 임기 동안 덩샤오핑이 설정한 도광양회(韜光養晦)와 개혁개방 전략의 세 가지 핵심 줄기를 뒤집어 버렸다. 첫째, 덩샤오핑이 마오쩌둥 시대의 대혼란의 실수를 피하기 위해 만든 집단지도체제를 무시하고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둘째, 미국과 잘 지내라는 덩의 도광양회 지침을 버리고 도전과 대결의 유소작위(有所作爲)의 길로 나섰다. 셋째, 개혁개방의 핵심인 시장원리의 주도적 역할 대신, 당과 이념이 민간 기업의 경제 활동을 짓누르게 만들었다.

그런데 앞서 설명한 중국의 당면 도전과제들은 덩샤오핑의 전략노선으로 되돌아가야만 해결되게 되어 있다. 즉 최고 정책결정과정에 견제장치를 어느 정도 작동시켜야 제로코로나 정책이나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치명적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당과 이데올로기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시장원리와 민간 경제영역을 활성화시켜야 경제 활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대미 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국제적 포위망이 풀려, 떠난 외국 기업들이 돌아오고 첨단기술 발전도 원활해질 것이다.

최근 석 달 동안 중국 정부는 다소 정책의 톤을 바꿨다. 제로코로나 정책을 급작스레 폐기했고, 친기업적 발언들을 내놓았으며, 미·중정상회담에서는 오랜만에 시진핑 주석의 웃는 얼굴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그런 전술적인 대응이 아니라 대전략의 근본적 변화다.

아무래도 시진핑 주석은 너무 빨리 도광양회를 버렸다. 그는 과연 자신이 버렸던 길로 유턴하는 대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 아니면 쇠퇴하는 도전국의 위태로운 길을 갈 것인가? 그것이 2020년대 세계평화의 운명이 걸린 최대 화두다.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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