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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마크 로스코의 죽음의 블랙과 생명의 레드, 잡스도 말년에 빠지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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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호 22면

[영감의 원천] 마크 로스코와 연극 ‘레드’

마크 로스코의 걸작 시그램 벽화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걸려 있는 모습. 현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옮겨졌다. 문소영 기자

마크 로스코의 걸작 시그램 벽화가 2019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걸려 있는 모습. 현재는 테이트 브리튼으로 옮겨졌다. 문소영 기자

켄(추상화 거장 마크 로스코의 조수): “그냥 위선을 인정하시라고요. ‘현대미술의 대사제’가 ‘소비의 신전’ 벽에 그림을 그린다는 걸 말이에요. 선생님은 예술에 상업주의가 들어가는 걸 욕하지만 돈을 받잖아요.” (중략)

로스코: “나도 거기(시그램 빌딩의 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스)가 뉴욕에서 제일 돈 많은 놈들이 밥 먹고 자랑질하러 오는 데라는 걸 알아. 난 내 그림으로 거기서 밥 먹는 개자식들 식욕을 싹 떨어뜨려 주고 싶었다.”

켄: “시그램 빌딩 관계자들한테도 그 얘기 했어요?”

2월 19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하는 연극 ‘레드’의 불꽃 튀는 대사들이다. 영화 ‘글래디에이터’(2000), ‘007 스카이폴’(2012) 등의 시나리오를 쓴 작가 존 로건이 추상표현주의 화가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실화인 ‘시그램 벽화 사건’에 바탕을 두고 쓴 연극이다. 2010년 연극계의 아카데미상인 토니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한국에서는 2011년 초연되었는데, 이번까지 벌써 6번째 무대에 오를 만큼 인기가 많다. 이번 시즌에는 이 연극에 처음 합류한 유동근 배우와 세번째 시즌 출연인 정보석 배우가 로스코 역을 맡고 있으며, 강승호와 연준석 배우가 로스코의 조수 켄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해고? 넌 이제야 처음 존재했어”

연극 ‘레드’의 한 장면. 마크 로스코 역의 유동근과 그의 조수 켄 역의 강승호.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레드’의 한 장면. 마크 로스코 역의 유동근과 그의 조수 켄 역의 강승호. [사진 신시컴퍼니]

시종일관 로스코의 스튜디오를 배경으로 로스코와 켄 두 사람만 나와서 대화를 쏟아내는 2인극이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베테랑 배우들의 로스코 연기가 전혀 ‘외화 더빙’ 같지 않다는 것이리라. 놀랍게도 그들의 연기는 필자가 기자로서 만나온 여러 한국 원로 화가들을 떠올리게 했다. 예술에 대해서 에고가 폭발하는 장광설, 영감과 감동을 주는 동시에 심술궂게 따지고 싶은 도전 의식도 불러일으키는 그 말들과 말투를 들으니 말이다. 덕분에 이 연극은 20세기 중반 미국의 로스코와 그의 조수 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도 있는 예술 거장과 그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 사람의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1950년대 말 실제 있었던 ‘시그램 벽화 사건’은 이것이다. 뉴욕 시그램 빌딩이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의 설계로 완공 전부터 화제가 되며 건설되고 있을 때, 이 빌딩에 들어설 고급 레스토랑 포시즌스의 벽화가 로스코에게 맡겨졌다. 명성과 돈이 함께 굴러들어올 탐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로스코는 프로젝트를 위해 한두 해 동안 여러 점의 그림을 제작한 후 돌연 계약금을 반환하고 취소했다. 그리고는 이미 완성된 그림들을 훗날 영국 런던의 테이트 미술관에 기증했다. 연극 ‘레드’는 그 과정에서 벌어진 로스코의 심적 변화, 이와 관련된 그의 예술철학과 고뇌를 가상인물인 조수 켄과의 대화와 설전을 통해 풀어낸 것이다.

이 연극의 많은 대사들은 로스코가 실제로 한 말을 바탕으로 한다. 맨 위에 인용한 ‘식욕 떨어뜨리는 그림’ 대사의 경우도 로스코가 실제로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계약 상대방에게 그 얘기 했냐’는 켄의 질문은 바로 많은 이들이 묻고 싶은 질문일 것이다. 로스코의 항변은 아무래도 위선적이고 기만적으로 들리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로스코는, 나아가 모든 예술가는, 그의 예술을 각자 자기 멋대로 향유하는 이들에게 불만을 잔뜩 느끼면서도 그들을 원한다. 그들에게 더 많이 보여지기를, 미술사 한 페이지에 휘황하게 이름이 박히기를, 그래서 자기 예술이 지속 가능하기를, 그러나 그들에게 종속되지는 않기를….

그러다 보니 예술가는 딜레마에 빠지고, 켄은 이 점을 예리하게 파고 든다. 켄은 이 연극에서 ‘아들 세대’ 예술가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또한 예술가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존경하면서도 또 따지고 들고 싶은 모든 질문자들의 상징이기도 하다. 켄이 로스코에게 한바탕 퍼붓고 나서 “이제 저 해고되는 거죠?”라고 묻자 로스코는 “해고? 넌 이제야 처음 존재했어”라고 대답한다. 그렇게 로스코는 딜레마에 무너지지 않고 컨트롤을 해나간다. 이 탁월한 긴장감이 탁월한 연극을 만들었다.

마크 로스코 입문 용으로 좋은 연극이다. 로스코가 대사에서 종종 강조하는 ‘비극성’은 로스코 작품 세계의 핵심이다. 그가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이라고 한 것처럼. 혼돈의 러시아에서 유태인으로 태어나 겪은 어린 시절과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기억부터, 예술가든 어떤 인간이든 쇠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까지, 그리고 생명력을 함축하는 ‘레드’와 죽음을 함축하는 ‘블랙’의 균형을 맞추는 것에 인간은 언제나 실패하는 것까지, 그래서 그의 라이벌이자 동료인 잭슨 폴록이 자살 같은 사고로 생을 마감한 것까지, 모든 것이 ‘비극’의 원천이었다.

극중에서 로스코는 팝아트를 비웃으며 자신은 “뭔가 불멸인 것. 만화책이나 수프캔이 아니라, 뭔가 나를 초월하고 현재를 초월한 것”을 추구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예술관은 확실히 ‘낭만주의적’인 데가 있다. 켄은 로스코가 검은색을 죽음과 동일시하는 게 감상적이고 낭만주의적이라고 지적한다.

로스코는 “그럼 네가 흰색을 죽음과 동일시하는 건 뭐냐?”라고 따진다. 켄은 어릴 적 부모가 강도에게 살해당했고 부모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창밖에 눈이 쌓여 있던 기억이 강렬해서 흰색을 보면 죽음이 연상된다고 했었다. 그러자 켄은 “그건 그냥 개인적인 반응이에요. 그걸로 내 예술 감수성 전반을 구축하진 않았다고요”라고 대답한다. 로스코는 “오히려 그랬어야지. 두려움이 없다면 네 인생을 이용해야 해”라고 대꾸한다. 켄은 “나는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냥 그건 너무 자기한테 빠지는 거라 안 하는 거지. 예술이 다 사이코드라마여야 해요?”라고 대든다.

예술은 끝없이 비극과 씨름하는 것

연극 ‘레드’의 한 장면. [사진 신시컴퍼니]

연극 ‘레드’의 한 장면. [사진 신시컴퍼니]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불꽃이 튄다. 로스코과 켄의 예술관 대결일 뿐만이 아니다. 로스코가 말한 대로 니체의 비극성과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자기고백적이며 낭만주의적인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시대가 이제 저물어가고, 시대의 단면을 감정 없이 냉정하게 드러내는 팝아트와 개념미술 등 포스트모던 아트가 떠오르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극중에서 로스코는 “아이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죽여야 한다”라면서 “우리는 큐비즘을 부숴버렸다”고 한 것처럼 이제는 그가 파괴되는 아버지가 된 것이다.

연극은 시그램 벽화 작업이 지속되던 2년 간만 다루고 있지만, 그 후 10여 년 후에 마크 로스코가 어떻게 세상을 떠났는지를 계속 암시하고 있다. 그의 죽음은 한국의 추상미술 거장 김환기(1913-1974)의 1970년 2월 26일 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타임즈〉에 MARK ROTHKO가 어제 팔 동맥을 잘라 자살한 기사에 놀라다. 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가 비명에 가다니. 어찌 생각하면 그럴 수 있는 예술가인 것도 같다. 인생을 거의 살았는데 왜 그랬을까.’ 인생을 이미 거의 다 살았는데도 그랬던 건, 로스코가 두려워하던 대로 ‘블랙’이 점차 ‘레드’를 집어삼키는 것을 무력하게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기 때문일까. 동맥에서 펄떡이는 ‘레드’를 끌어내  ‘블랙’과 균형을 맞추려던 마지막 시도였을까.

로스코에게서 창조의 영감을 받는 사람 중에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도 있다. 잡스가 췌장암으로 별세했을 때 그의 누이인 모다 심슨은 뉴욕타임스에 쓴 추도 글에서 ‘말년에 그는 전에는 잘 몰랐던 마크 로스코의 그림에 대한 책을 탐독했는데, 무엇이 미래 애플 캠퍼스(애플 본사)의 벽에 걸려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지를 생각하면서였다’라고 했다.

사실 잡스가 로스코 작품의 어떤 면에 끌렸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단지 추정될 뿐이다. 어떤 이들은 로스코가 1943년 바넷 뉴먼 등 다른 추상 표현주의 화가들과 뉴욕타임스에 발표한 다음과 같은 선언문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1. 우리에게 예술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험이며, 그 탐험은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만 가능하다. (중략)

3. 예술가로서 우리의 역할은 관람자가 세상을 자기 식대로가 아니라 우리 식으로 보게 만드는 것이다.

4. 우리는 복잡한 생각의 단순한 표현을 선호한다. (후략)

선언문의 1번, 3번은 잡스의 진취적이고도 독선적인 성격과 잘 어울린다. 또 4번 ‘복잡한 생각의 단순한 표현’은 아이폰을 비롯한 애플 제품의 핵심 컨셉트이자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스코가 애플의 철학을 결정지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데, 왜냐하면 잡스가 로스코에 빠져든 것은 이미 그가 애플 철학을 정립한 말년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잡스가 로스코에게 영감을 받은 것은 선언문의 마지막에 있는, 로스코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성’이었는지도 모른다. 선언문 7번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주제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며, 비극적이고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주제만이 정당하다고 단언한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가 원시예술 및 태고예술과 영적인 연대감을 공언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극성은 인간의 연약함과 시공간적 유한성에서 오는 근원적인 비극성이다. 로스코가 생각하는 예술은 그 비극에 무너지기보다 끝없이 씨름을 하는 것이었다. 잡스는 죽음을 예감하고 있던 말년에 로스코의 비극성을 되새기며 그의 마지막 창조에 박차를 가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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