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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에 갇혀 뜬구름 같던 확장억제,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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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호 05면

오스틴 미 국방, 연초 방한 진짜 목적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과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31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하여 이종섭 국방장관과 회담했다.  2022년 11월 제54차 연례국방장관회의(SCM)에서 만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다시 만난 것이다.  오스틴 장관은 “한미동맹은 철통(Ironclad)같다”며 “한국에 대한 북한의 도발은 한미동맹에 대한 도발과 같다”고 했다.  오스틴 장관의 발언은 지난 한 해에만 미사일 70발을 쏘고, 그것도 모자라 연말에 노동당 제8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국을 겨냥한 ‘대적투쟁방향’을 제시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다.

그러나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이런 발언을 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점증하고 있는 자체 핵무장론을 잠재우면서 미국의 실효적인 확장억제력 제공을 협의하고 합의하기 위함이었다. 한국에서 핵무장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작년부터 급격하게 핵무장 찬성 여론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최근 최종현학술원의 여론조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 비핵화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응답이 77.6%, 독자적 핵개발 필요성에 대한 응답이 76.6%였다. 윤석열 대통령도 최악의 경우 자체 핵무장을 추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미국은 한국민의 불안과 한국 정부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말로만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오스틴 장관의 실질적인 방한 목적이었다.

억제란 공격을 통해 얻는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크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인식시킴으로써 공격을 단념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억제는 직접억제(Direct Deterrence)와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로 구분된다. 직접억제는 상대방이 자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억제력을 발휘하는 것을 말하고 확장억제란 상대방이 자국의 동맹국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확장억제는 핵우산과 거의 같은 의미다. 2006년 10월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자 한국 사회는 시쳇말로  ‘멘붕’에 빠졌다. 같은 달 미국에서 개최된 제38차 SCM에서 한국은 핵우산이라는 낡은 용어(?)로는 한국민을 안심시킬 수 없으니 확장억제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주장했다. 미국이 이를 용인함으로써 공동성명에 처음으로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제”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후 확장억제는 진화를 거듭하여 북한의 핵위협뿐만 아니라 미사일 및 재래식 위협에도 확장억제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작년 제54차 SCM 공동성명에서는 미국은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능력 및 진전된 비핵능력 등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능력을 운용하여 대한민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심지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김정은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까지 명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확장억제력이 어떻게 제공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및 행동 계획은 미흡했다. 2006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이 확장억제력을 제공하겠다는 소리는 요란했지만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했고 국내에서는 “서울을 지키기 위해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할 것인가”란 물음이 공공연히 나왔다. 이번 국방장관회담을 통해 드디어 뜬구름 같은 확장억제라는 용어가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합의된 확장억제강화 방안은 다음과 같다.

우선, 정보공유의 수준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북핵과 미사일에 대한 전략정보는 거의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인데 미국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히겠다는 것이다. 또 미국뿐 아니라 정찰위성 5기 이상을 운용하고 있는 일본으로부터도 획득할 수 있다.  이번 회담에서 두 장관은 조기에 한·미·일 안보회의(DTT)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미사일 경보 정보에 대한 실시간 공유를 포함, 다양한 정보 공유 방안들이 논의될 수 있다.

둘째, 공동 기획분야에서는 맞춤형 억제전략(TDS)을 새로 수립하기로 했다. 한·미는 10년 전 북한 핵미사일 위협을 고려하여 TDS를 수립했다.  그러나 10년 전 전략으로는 현재의 고도화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억제력을 발휘할 수 없다. 신TDS는 올해 서울에서 개최 예정인 제55차 SCM에 보고될 예정이다. 한·미가 공동으로 TDS를 수립한다는 것은 기획 단계부터 한국의 의지가 반영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공동 실행분야에서는 핵위협 억제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확장억제 수단 운용 연습(TTX)을 토의하기로 했다. 북한 핵위협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고 각 시나리오별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한·미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의하는 것이다. 양국 국방차관보급을 수석으로 하여 약 40명 정도가 TTX에 참여할 예정인데 2월 중에 미국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여기에서 실효적인 대응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다.

넷째, 북한 핵 위기시 한·미위기관리협의체(KCM)를 활성화함으로써 의사결정 전 과정에서부터 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KCM은 미국의 전략무기를 적시에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도록 협의하고, 유사시 양국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에게 위기관리 대응과 결심을 조언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빈번해지면 KCM은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전문가들과 언론에서 많이 거론되던 핵공유에는 이르지 못하지만, 앞서 말한 4가지만 제대로 이행되어도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대한 신뢰는 제고될 수 있다. 한국의 의지와 능력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연합연습과 훈련을 강화해 나간다면 확장억제력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이제 비로소 문서상의 확장억제가 행동으로 옮겨질 가능성이 커졌다.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높아진다면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핵무장론도 사그라질 수 있을 것이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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