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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 금리 인하 선 그었지만, 시장선 연내 ‘피벗’에 베팅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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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호 06면

중앙은행·시장 줄다리기

“최근 미국의 경제상황과 정책금리에 대한 연방준비제도와 금융시장 참가자 사이의 시각차가 부각되고 있는데, 인플레이션 관리를 위한 연준의 의도적인 발언(블러핑) 때문인가, 아니면 시장의 희망 섞인 전망 때문인가.”

미국이 지난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일제히 금리를 인상했다. 사진은 제롬 파월 미 연준(Fed)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지난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일제히 금리를 인상했다. 사진은 제롬 파월 미 연준(Fed) 의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난달 31일 공개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에 기록된 일부 금통위원의 질문이다. 통화정책 전환(피벗)은 ‘시기상조’라는 미국 연준(Fed)을 앞질러 가는 시장 상황에 주목한 것이다. 이에 “연준과 시장이 상대의 반응을 감안해 가며 전망을 조정해 나가는 일종의 게임 상황”이란 답변이 나왔다. 통화정책의 전환점이 임박했다는 기대 속 시장의 과속은 한국은행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일제히 금리를 올렸다. 연준은 지난 1일(현지시간) 종료된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0.25%포인트 올렸다. 11개월 만의 ‘베이비스텝’으로 미국 기준금리는 연 4.5~4.75%로 올랐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회의를 마친 뒤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올해 우리가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FOMC 회의 다음날 유럽중앙은행(ECB)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을 단행해 기준금리를 2.5%에서 3%로 높였다. 지난해 12월에 이어 또 다시 빅 스텝을 선택한 것이다. 같은 날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역시 기준 금리를 연 4%로 0.5%포인트 인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지난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일제히 금리를 인상했다. 사진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지난 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올해 첫 금리 결정 회의에서 일제히 금리를 인상했다. 사진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이터=연합뉴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지난 2일(현지시간) 통화정책 회의를 마친 뒤 “금리 인상이 막바지에 이른 것은 아니며, 우리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고 밝혔다. 다음 회의에서도 0.5%포인트 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공격적인 가이던스도 내놨다. 여전한 물가 부담에 시장이 앞서갈 여지를 남기지 않은 셈이다.  버트콜린 ING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스페인 등 일부 주요 국가의 근원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등 여전히 물가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라 ECB는 강경한 입장”이라고 평가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금리 인상에도 시장은 피벗 기대감에 강세를 보였다. FOMC 당일 뉴욕증시에선 나스닥 지수가 2% 상승한 1만1816.32에 거래를 마쳤다. S&P500 지수와 다우지수 등 주요지수도 일제히 상승했다. 채권 시장에서 미 국채 10년물 금리는 0.13%포인트 내린 3.39%를 기록했다. 파월 의장이 금리 인하를 부인했음에도 시장은 고점을 찍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선물 시장에선 올 여름 연준의 금리 인하에 베팅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선 올해 9월 연준의 0.25%포인트 금리 인하 가능성이 11.3%까지 올라왔다. 연말에는 0.5%포인트 내려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유로존에선 지난해 10월 10.6%였던 물가상승률이 지난달에는 8.5%까지 내려오면서 증시 강세가 나타났다. 예상보다 따뜻했던 겨울 날씨에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하고, 에너지 가격발 물가 급등 우려가 잦아들자 유로스톡스는 올들어 1월 한달간 9.7%, 독일 DAX지수는 8.6% 상승했다. ECB와  BOE가 0.50%포인트 금리를 인상한 2일(현지시간)에도 유로스톡스와 독일 DAX지수는 각 각 1.35%, 2.16% 상승했다.

시장이 중앙은행의 행보와는 반대로 가는 이유는 뭘까.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정점을 찍으면서 중앙은행이 더 이상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기대가 가장 큰 이유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물가둔화(디스인플레이션)’를 15번이나 언급했다. 미국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지난해 6월 9.1%를 찍고 연말 6.5%까지 떨어질 동안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단어를 처음으로 거론한 것이다. 지난해 금리 조정 과정에서 연준이 한 달도 안 돼 입장을 바꾸는 모습이 반복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신동준 KB증권 WM투자전략본부장(CIO)은 “물가는 고용과 함께 대표적인 후행 지표인데, 연준이 이를 보고 통화정책을 결정하겠다고 하니 뒷북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지난해 물가 급등의 기저효과 때문에 올해는 가만히 있어도 물가가 내려갈 상황이라 결국은 통화정책에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 입장에선 섣불리 통화정책의 전환을 언급했다가 물가가 다시 급등하기라도 하면 감당하기 어렵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연준이 조금만 틈을 주면 시장이 너무 낙관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되풀이됐다”며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기업들도 실적을 하향 조정할 만큼 경기가 심상찮은데, 물가까지 다시 급등하면 감당하기 어려우니 연준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23일 금통위를 앞둔 한국은행은 혼란스런 상황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시장에선 금리 동결 전망이 힘을 얻었다. 실제로 지난달 30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2%에서 1.7%로 낮춰 잡았다. 세계 경제성장률(2.7%→2.9%)은 물론 미국(1%→1.4%)과 일본(1.6%→1.8%) 등 주요국 성장률은 상향 조정된 것과 상반된 결과다. 수출에서도 경고음이 거센데다 당분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부담이다. 수출 효자인 반도체 수출이 44% 줄면서 지난달 무역 수지는 사상 최대치인 126억9000만 달러(약 15조6594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돌아서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물가가 심상찮은 탓에 금리인하에 나서기도 어렵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 요금이 28.3% 급등하며 물가 부담을 키웠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1월 물가상승률은 5.2%로 지난해 12월(5%)보다 상승폭이 더 커졌다. 한은이 당분간 추가 금리 인상과 동결 가능성을 모두 열어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말 한은의 금리 인상 행보 속에 기업 자금 시장에 위기 신호가 들어오자 정부가 유동성 공급으로 막은 전례가 있다”며 “올해도 정부가 유동성을 지원하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을 지속할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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