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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태 뇌물·횡령 기소…대북송금 '제3자 뇌물죄' 추가 기소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검찰이 800만달러 대북 송금 혐의를 받는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김 전 회장이 북한에 쌍방울과 경기도의 대북 사업을 목적으로 외화를 보내고 민선 7기 경기도에서 각종 이권 사업을 수주하려는 등 부정한 청탁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대북송금 대납 의혹’은 추가 수사를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는 3일 오후 김 전 회장을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정치자금법 위반 및 뇌물공여, 자본시장법 위반, 횡령·배임,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변호사비를 대납했다는 의혹은 구속영장 청구 당시에 이어 공소제기 단계에서도 빠졌다. 양선길 현 쌍방울 회장은 김 전 회장의 회사 자금 횡령·배임 혐의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19일 김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를 공소장에 담지 않았다. 이 배경에 김 전 회장의 진술 변경과 제3자 뇌물죄 적용 검토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조사 초기 북한에 보낸 500만달러를 대북 경제협력 사업권을 위해 준 돈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주말 김 전 회장은 돌연 진술을 바꿔 “2019년 11월 북한에 300만달러를 더 줬다”며 이 돈의 용도를 ‘이재명 지사의 방북에 필요한 경비’라고 말했다고 한다.

2018년 11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가 경기도 성남 제2판교테크노밸리를 방문한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왼쪽 둘째) 등 북한 대표단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른쪽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아태위는 당시 쌍방울그룹의 대북 사업 창구였다. [뉴스1]

2018년 11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왼쪽)가 경기도 성남 제2판교테크노밸리를 방문한 이종혁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위) 부위원장(왼쪽 둘째) 등 북한 대표단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오른쪽은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장. 아태위는 당시 쌍방울그룹의 대북 사업 창구였다. [뉴스1]

방북 비용 300만달러는 '제3자뇌물'?

김 전 회장이 북측에 건넸다는 800만달러 중 300만달러는 쌍방울이 대북사업을 위해 보낸 돈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을 적용할 수 없게 된다. 대신 이 돈이 이재명 당시 경기지사의 방북 허가를 위해 북한 고위급 인사에게 전달됐다면, 제3자 뇌물죄 위반 혐의를 적용해야 할 당위성이 커진다. 남북교류협력법은 통일부의 승인 등 절차를 잘 지켰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지만, 제3자 뇌물죄의 경우 애초에 부정한 청탁과 대가성의 유무가 쟁점이기 때문이다. 제3자 뇌물죄 판례를 살펴보면, 이 혐의의 성립 요건에 이권 추구를 목적으로 한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 한다. 해당 이권에 대해 상호 묵시적 인식과 양해가 있어도 제3자 뇌물죄가 구성될 수 있다는 판례도 있다.

검찰은 그간 김 전 회장과 이 대표가 수차례 통화한 내역을 추적했다. 쌍방울이 경기도의 정책 사업을 수주하려 했던 정황 등에도 주목했다. 김 전 회장이 북측에 대북사업 외 ‘방북 허락용 대북송금’ 등 다른 명목으로 건넸다는 외화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만큼 기소 이후 추가 수사를 통해 제3자 뇌물죄를 적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쌍방울은 경기도와 함께 북측 고위급 인사들을 초청한 평화국제대회를 개최하며 대북사업 교두보 역할을 한 아태평화교류협회(아태협)에 사무실을 무상 임차하고 수억원의 기부금을 전달했다.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북한의 동의를 구했다는 대동강 맥주 유통과 옥류관 분점 사업에 경기도가 공을 들이는 등 아태협을 매개로 쌍방울과 경기도가 대북 사업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양상이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해외 도피생활 중 태국에서 체포된 쌍방울 그룹의 실소유주 김성태 전 회장이 17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압송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쌍방울-경기도 대북사업 컨소시엄"

 쌍방울이 돈을 대고, 경기도가 광역자치단체로서 교류 협력의 전면에 나서는 일종의 '대북사업 컨소시엄'을 구성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쌍방울 계열사로부터 법인카드와 법인차량 등 수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화영 전 평화부지사에 대한 형사재판에 출석한 쌍방울 전현직 임원들도 당시 쌍방울과 경기도가 한 몸처럼 대북 사업을 했다는 증언을 내놨다.

검찰은 쌍방울이 수백만달러를 송금하고도 대북 사업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자 경기도 정책 사업에도 눈을 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쌍방울은 2020년 경기도 공공배달앱 사업 수주를 위해 수입소프트웨어 총판 IT기업인 포비스티앤씨(현 디모아)를 인수하고 경기도 안산 등지의 대규모 태양광 사업 수주를 검토했다.

한편 검찰은 김 전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기간과 액수를 알려진 4500억원 규모보다 좁혀 기소했다. 2014년부터 2022년까지 그룹 계열사 자금 43억원을 횡령하고 2019~2021년 그룹 임직원 명의로 만든 비상장회사 자금 592억원을 횡령·배임한 혐의를 공소장에 담았다. 다만 이번에 기소하지 못한 일부 횡령·배임의 사용처가 이재명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변호사비 대납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관계자는 “쌍방울 전현직 회장 관련 범죄 사실이 여럿이지만, 구속 후 구속수사 기간 20일 내에 구속영장에 포함된 범죄사실을 중심으로 수사해 일부 범죄사실을 기소했다”며 “촉박한 시한으로 기소하지 못한 여러 범죄사실들은 계속 수사 중으로 국외도피한 자금관리자와 수행비서 송환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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