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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가짜뇌전증' 병역브로커 2명, 의사 면제 도운 동업자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면제·감면받도록 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병역브로커 구모(47)·김모(38)씨가 과거 의사의 병역 면탈 과정에서 동업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두 사람은 그간 ‘서로 아는 사이지만, 동업한 적은 없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이 의사인 병역의무자의 의뢰를 받은 뒤 역할을 분담해 병역면탈을 도우면서 총 1억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병역브로커 김모(37)씨가 지난달 9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병역브로커 김모(37)씨가 지난달 9일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3일 법무부가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브로커 김씨의 공소장에 따르면 공중보건의로 근무 예정이던 의사 A씨는 어머니 B씨가 구씨로부터 받은 허위 뇌전증 시나리오 파일을 보고, 2021년 3월 서울 목동의 한 공원에서 발작이 일어난 것처럼 거짓으로 쓰러졌다. A씨는 3급 현역 판정을 받고 2021년 3월 공중보건의로 편입돼 같은 해 4월부터 3년 간 복무할 예정이었다.

A씨가 ‘발작 연기’를 하자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브로커 김씨가 119에 신고했고, 응급실로 후송된 A씨는 구씨의 시나리오에 따라 당직 의사에게 “나는 청소년기 외국에서 간질 진단을 받았고, 19살 때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한약과 침 치료만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마지막 발작은 이번 설날쯤이고 당시에는 집에서 게임하다가 발작했다. 오늘 공원 벤치에 앉아 게임하다가 경련한 것 같다. 행인(브로커 김씨)이 쓰러진 나를 보고 119에 신고한 것 같다”고 했다.

A씨와 B씨 모자는 같은 해 4~7월 구씨·김씨와 공모해 뇌전증 약을 처방받거나 뇌파 검사를 받았다. 같은해 11월 신경과 의사로부터 ‘난치성 간질을 동반하지 않은 상세불명의 뇌전증’이란 병명의 병무용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병무청에 제출했다.

이들은 구씨의 소개로 경기도 안산의 다른 병원을 찾아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하며 뇌파 검사를 받곤 ‘난치성 간질을 동반하지 않은 전신발작으로 이어지는 단순부분발작’이라는 병명의 병무용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출했다. 지난해 3월 결국 전시근로역인 5급 판정을 받았다. 구씨와 김씨는 이 대가로 A씨와 B씨 모자로부터 1억1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남부지검 병역면탈 합동수사팀(팀장 박은혜 형사5부장)은 지난달 26일 김씨를 구속기소하면서 A씨는 물론 범행을 도운 어머니 B씨도 공범으로 함께 기소했다. 구씨의 경우 지난해 12월 21일 병역법 위반 등의 혐의로 먼저 구속기소됐다. 그는 지난달 27일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조상민 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김씨는 2020년 2월 행정사 업무를 하면서 알게 된 구씨로부터 ▶뇌전증은 원인과 치료 결과를 정확히 규명하거나 객관적 검사 결과로 명확히 진단하기 어렵고 ▶의도적인 발작 등으로 뇌전증 증상을 허위로 만들면 전문의도 속을 수 있으며 ▶병역판정검사에서도 신체검사 담당의사를 속여 4~5급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한다. 실제 구씨가 이런 방법으로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받아 챙길 때 도와주고 가담하면서 범행 방법을 습득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소장에는 김씨의 경우 단순히 병역의무자와 상담하면서 맞춤형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스스로 병역의무자의 보호자 행세를 하면서 병원에 갔을 때 뇌전증 증상이 있는 것처럼 의사에게 허위로 설명하는 등 직접 나서기도 했다고 써 있다. 지난달 26일 김씨와 함께 기소된 병역면탈자의 공범 6명 중 4명은 어머니, 2명은 친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씨가 이들로부터 받은 대가는 건당 300만원~1억1000만원으로, 공소장에 기재된 총 수수액은 2억6610만원이다. 병역면탈자 2명으로부터는 계약서상 각각 600만원과 2000만원을 약정했지만 실제 지급받지는 못했다.

한편 합동수사팀은 구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한 결과 병무청 내부 직원이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달 30일 대구 소재의 중앙병역판정검사소를 압수수색했다. 같은 날 합동수사팀은 사회복무요원 대체 복무를 회피하려 한 혐의를 받는 래퍼 나플라(31·본명 최석배) 사건과 관련해 서초구청 안전도시과와 대전 병무청, 서울지방병무청을 압수수색했다. 나플라는 구씨에게 병역면탈을 의뢰한 래퍼 라비(30·본명 김원식)가 대표인 회사에 소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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