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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세난의 시대…전월세 갱신요구권 사용 세입자 반토막

중앙일보

입력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월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아파트 월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전세 계약 만료를 앞뒀던 이모(36·인천)씨는 보증금을 일부 낮춰줄 테니 계약을 연장하자는 집주인의 제안을 받고 최근 재계약을 했다. 이씨는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설움을 겪다 역전세난을 체감하니 기분이 묘했다”며 “보증금을 줄여 여유 자금을 확보했고, 앞으로 전셋값 추이를 보면서 언제든 더 싼 집으로 이사할 수 있으니 밑지는 장사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의 영향으로 전·월세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하는 세입자가 급감하고 있다. 또 갱신 요구권을 사용한 계약에서는 이전보다 가격을 낮춘 감액 계약 비율이 크게 늘었다. 집주인과 세입자 간 지위가 뒤바꾸니 역전세난 속에서 전세금의 급격한 인상을 막는 데 쓰였던 갱신요구권이 임대인에게 감액 갱신을 요구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3일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가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주택의 국토교통부 전·월세 실거래가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12월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계약 건수는 6574건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는 전체 갱신계약 중 36% 수준으로 전년 동월 대비 47% 감소한 수치다. 역전세난 속에서 갱신을 원하는 세입자가 갱신 요구권을 사용하지 않아도 임대인과의 협의가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존에는 임차인이 계약 갱신을 원해도 임대인이 거절하면 갱신할 수 없었다. 그러다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임차인의 계약 갱신요구권이 도입됐다. 임차인은 갱신요구권을 1회에 한해 행사할 수 있으며 임대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할 수 없다.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뉴스1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모습. 뉴스1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갱신요구권을 사용하는 계약의 경우 종전 임대료보다 감액해 계약을 맺는 비율이 많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수도권 아파트에서 갱신요구권을 사용한 갱신계약 가운데 종전보다 임대료를 감액한 계약은 1481건으로 전년 동월(76건) 대비 19배 이상 급증했다. 갱신요구권 사용 계약의 32%가 감액계약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세의 월세화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수도권 주택 전·월세 갱신계약 중 전세를 월세로 변경한 계약은 5971건으로 전년 동기(3572건) 대비 67% 증가했다. 집값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커지자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전세보다 월세를 택하는 세입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집토스의 진태인 아파트중개팀장은 “금리 상승으로 대출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세입자들은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매물을 찾아 나서고 있다”며 “임대인은 전세 보증금을 감액해주거나 세입자의 대출 이자를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다. 반면 세입자는 최근 전세 사기 이슈로 인해 월세 선호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년 전보다 급락한 전세 시세와 더불어 수도권에 지역별로 대규모 공급이 예정돼 있어 주택 임대 시장의 감액 갱신 및 갱신요구권 감소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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