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에 상관없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수많은 연애 리얼리티 예능의 범람 속에, 이런 단순한 규칙을 내세운 덕분에 ‘흥한’ 프로그램이 있다. 웨이브가 지난해 12월 9일부터 공개한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이하 ‘좋아하면 울리는’)이 그 주인공이다.
‘좋아하면 울리는’은 웨이브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협업을 통해 탄생한 연애 리얼리티로, 천계영 작가가 카카오웹툰에서 2014~2022년 연재한 웹툰을 기반으로 한다. 원작 웹툰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반경 10m 안에 있으면 알람을 울려준다’는 일명 ‘좋알람’ 앱이 등장하는데, 예능은 이 앱을 실제로 구현해 짝짓기 게임에 녹여냈다.
8명의 남녀가 합숙하면서 앱을 활용해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상대를 추측하고, 최대한 많은 좋알람을 받기 위해 심리전을 벌이는 식이다.
앱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기존 연애 리얼리티와 큰 차별점이 없던 이 예능이 ‘역주행’ 흥행을 하게 된 시점은 자스민(가명)이라는 여성 출연자가 또 다른 여성 출연자(백장미)를 향해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자스민은 초중반까지 남성 출연자들과 러브라인을 형성하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실은 처음부터 백장미에 끌렸다는 ‘반전’이 후반부(9~10화)에 들어서야 공개됐다.
이같은 반전이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9~10화 공개 직후 전주 대비 5배 넘는 신규 유료가입자 견인 수치를 보이는 등 프로그램에 대한 뒤늦은 관심이 이어졌다. ‘좋아하면 울리는’을 보기 위해 웨이브 이용권을 결제한 가입자 수가 그만큼 급증했다는 의미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집계한 1월 4주차 ‘TV-OTT 통합 화제성’(비드라마 부문) 조사에서는 여타 TV 예능들을 제치고 ‘좋아하면 울리는’이 12위에 오르기도 했다.
자스민-백장미의 서사가 화제가 된 건 단순히 이들이 한국 짝짓기 예능 최초의 여-여 러브라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일반인 동성애자가 출연하는 연애 리얼리티는 지난해 웨이브가 공개한 ‘남의 연애’ ‘메리퀴어’ 등의 사례가 있었다. ‘남의 연애’는 남성들끼리 합숙하며 짝을 찾는 과정을 그렸고, ‘메리퀴어’는 레즈비언·게이·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 커플의 일상을 담아냈다.
처음부터 성소수자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 이들 프로그램과 달리, ‘좋아하면 울리는’은 이성애·동성애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둠으로써 되레 실제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명료하게 보여줬다. 상대방이 내 마음을 불편해할까 혼자 끙끙 앓고, 주변의 시선 때문에 섣불리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는 등 성소수자가 사랑을 시작할 때 겪는 심리적 갈등을 오롯이 화면에 담아낸 것이다.
자스민이 용기를 내 백장미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감춰둔 진심을 표현하는 모습을 본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울 텐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멋있다” “내가 본 사랑 중에 제일 진짜 사랑 같아서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등의 응원 댓글을 쏟아냈다. “이런 열린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K예능이 반갑다”는 취지의 해외 시청자들이 작성한 영어 댓글도 자주 눈에 띈다.
3일 공개된 마지막회(13회)에서 자스민이 고민 끝에 남성 출연자를 택하면서 두 여성이 최종 커플이 되지는 못했다. 자스민은 백장미에게 “내가 더 용기가 있었다면 좋알람을 너한테 울렸을 것 같다”며 초반부터 마음을 표현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좋아하면 울리는’이 남긴 사회적 의미는 그 크기가 결코 작지 않다. 이성애를 당연한 기준으로 삼지 않은 연애 리얼리티의 등장과 이에 대한 시청자들의 호응은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는 요즘 세대의 열린 사고방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지금까지 동성애는 드라마나 영화 등 픽션 콘텐트에서 주로 다뤄졌는데, 이제는 일반인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예능에서도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라며 “이는 출연자들 뿐 아니라 제작진들도 이성애를 당연한 보편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변화”라고 짚었다.
이어 “여전히 사회적 벽이 높은 사랑에 도전하는 모습은 더 큰 울림과 재미를 줬다”며 “평소 동성애를 잘 받아들이지 않던 사람에게도 벽을 허무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