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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욕 안할게" 약속해야 지원?...이스라엘 극우정부 칼 빼든 곳

중앙일보

입력

이스라엘이 정부를 비판하는 영화·방송에 대한 지원 중단 의사를 밝혀 문화예술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정이 집권하며 이스라엘에 민주주의 위기가 심화하고 있단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H2: 디 오큐페이션 랩'의 한 장면. 사진 스틸이미지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 'H2: 디 오큐페이션 랩'의 한 장면. 사진 스틸이미지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감독인 노암 쉬자프는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이스라엘 정부는 영화를 정부의 선전 무기로 쓰려 한다'는 제하의 기고문을 보내 "이스라엘 내부에서 문화예술과 언론 탄압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앞서 지난달 슐로모 카르히 이스라엘 신임 통신부 장관은 자국 미디어가 지나치게 좌편향이라며 공영방송인 ‘칸(Kan)’에 대한 지원 중단을 시사했다. 칸이 10억 세켈(약 3600억원)의 공적 자금을 받아쓰면서 정부를 비판한다는 게 지원 중단 사유다.

이후 언론인들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현지매체인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당은 호시탐탐 칸에 지원금을 끊으려 해 비난 받아왔다"며 "칸에 이어 공영 라디오 방송국 등을 노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여기서 줄인 예산을 극우 뉴스 채널을 지원하는 데 쓸 것으로 보인다고도 덧붙였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지난해 12월 말 출범한 그의 극우 연정은 '역사상 가장 극우'란 평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지난해 12월 말 출범한 그의 극우 연정은 '역사상 가장 극우'란 평가를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영화계를 향한 압박은 더욱 심각하다. 극우 연정이 들어서며 취임한 미키 조하르 문화부 장관은 '나라 평판에 흠집을 내지 않고, 군인을 부정적으로 다루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에 서명해야 지원금을 주는 방침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달 발표했다.

조하르 장관은 "검열이 아니라, 국가에 적대적인 작품에 자금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일 뿐"이라고 밝혔지만 사실상 검열이란 것이 현지매체들의 분석이다. 이스라엘 영화시장은 규모가 작아 영화 제작자들이 제작비 대부분을 복권 기금을 비롯한 정부 기금으로 조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과 정착촌 문제로 갈등 중인 요르단강 서안지구 상황을 다룬 영화 상영이 줄줄이 취소됐다. 쉬자프 감독이 연출한 다큐멘터리 'H2: 디 오큐페이션 랩'은 서안지구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군사적 통제를 다뤘다는 이유로 극장가에서 밀려났다. 쉬자프 감독은 "이미 상영 중인 영화 '투 키즈 어 데이'의 제작비에 들어간 정부 자금을 반환하란 요구를 받았다"면서 "상황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해당 영화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2011) 속 한 장면. 사진 스틸이미지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2011) 속 한 장면. 사진 스틸이미지

이스라엘 방송국 i24뉴스는 “(네타냐후 집권기인) 2017년에도 비슷한 시도가 있어 영화인들이 크게 반발한 적이 있었다”며 “조하르 장관이 발표한 방침이 현실화된다면 앞으로 이스라엘 내에서 다양한 영화는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스라엘에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를 객관적으로 다룬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나왔다.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던 '다섯 대의 부서진 카메라'(2011)와 ‘더 게이트키퍼즈’(2012), 에미상 수상작인 '애드버킷'(2019)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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