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플] 기술 무장한 엔씨도 백기…팬덤 플랫폼 전쟁 2라운드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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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가 운영하던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가 이달 17일 서비스를 종료한다. 엔씨가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 디어유에 유니버스를 매각했기 때문. 게임에서 엔터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야심 차게 출사표를 던졌지만 2년 만에 백기를 든 셈이다. 향후 팬덤 플랫폼 시장이 어떻게 재편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슨 일이야  

이달 17일 서비스가 종료되는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 좋아하는 가수의 3D 캐릭터를 만들어 뮤직비디오 제작 등 다양한 콘텐트에 활용할 수 있었다. 사진 유니버스

이달 17일 서비스가 종료되는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 좋아하는 가수의 3D 캐릭터를 만들어 뮤직비디오 제작 등 다양한 콘텐트에 활용할 수 있었다. 사진 유니버스

유니버스는 “서비스 제공자인 엔씨소프트의 자산 양도 결정에 따라 2월 17일부로 서비스를 종료하게 됐다”고 지난달 11일 밝혔다. 유니버스 앱은 233개국에서 누적 다운로드 2400만건을 기록했다. 그동안 엔씨소프트가 자회사 클렙과 함께 운영했다. 클렙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동생인 김택헌 수석부사장이 대표를 맡고 있다.

유니버스 매각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흘러 나왔다. 당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산하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관심을 보이면서 카카오가 새 주인으로 떠올랐으나 SM 품에 안기게 됐다. SM의 디어유는 2020년 2월 팬덤 플랫폼 ‘버블’을 출시했다. 디어유는 에스엠스튜디오스가 최대주주(31.98%), JYP엔터테인먼트가 2대 주주(18.53%)다.

팬덤 플랫폼, 뭐가 중요해?

아티스트와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1:1 대화 서비스. 사진 유니버스.

아티스트와 더 가깝게 소통할 수 있는 1:1 대화 서비스. 사진 유니버스.

◦ 기술 위에 팬덤 : 유니버스는 엔터테인먼트 계열의 팬덤 플랫폼들과 접근이 달랐다. 엔씨의 관심은 기술 기반의 메타버스 플랫폼이었다. 아이돌 멤버의 3D 아바타를 이용자가 꾸밀 수 있게 하고, 좋아하는 스타의 목소리를 활용해 인공지능(AI) 보이스로 가상통화를 하는 서비스(프라이빗 콜)도 유료로 선보였다. 결제를 하면 원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아이돌의 AI 보이스와 통화할 수 있는 상품. 하지만 어엿한 ‘본체’를 두고 이를 흉내 낸 모습에 이용자 거부감은 심했다. 다양한 기술을 넣다 무거워진 앱에선 오류가 잦았고, 게임에선 보편적인 콘텐트 건당 과금 방식도 팬덤 플랫폼에선 유효하지 않았다. 이용자들은 뛰어난 기술 서비스보다 스타와의 교감을 더 원했다. 결국 유니버스는 초반보다 앱 용량을 40배가량 줄이고 서비스도 간소화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메타버스는 게임 회사에서 제일 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사업 다각화 측면에서도 욕심 나는 키워드였을 것”이라고 짚었다. “1년에도 수십 편의 게임을 검토하고 투자했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는 게임 회사 입장에서는 유니버스 역시 여러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아티스트와 1:1 프라이빗 메시지를 구독할 수 있는 버블. 사진 버블

아티스트와 1:1 프라이빗 메시지를 구독할 수 있는 버블. 사진 버블

◦ 핵심은 IP와 소통: 같은 팬덤 플랫폼이지만 SM의 버블은 스타와 팬덤 플랫폼 이용자 간 소통에 집중했다. 스타는 이용자들에게 전체 메시지를 보내지만, 이용자는 스타와 1:1 채팅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듯한 경험을 한다. 스타에게 답장도 보낼 수 있다. 프라이빗 메시지 서비스 구독권은 아이돌 멤버 1명당 월 4500원. 구독하려는 스타가 추가될 때마다 결제액이 늘어나는 수익 모델이다. 기능은 단순하지만 스타와 직접 소통을 원하는 팬들의 니즈를 공략했다. 그 결과 매출 성장세도 2019년 17억원에서 2022년 488억원(삼성증권 추정치)으로 가파르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디어유는 엔씨로부터 유니버스 사업의 지식재산(IP) 계약권 일체를 넘겨받는 자산양수도 계약을 했다. 디어유로선 SM과 JYP 등 71개 회사와 계약해 372명의 아티스트에 대해 팬덤 서비스를 운영했다. 여기에 엔씨의 유니버스에 입점해 있던 200여 명이 추가되는 것. 카카오엔터의 스타쉽도 지난달 19일 디어유 합류를 공식화했다. 강신규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미디어광고연구소 연구위원은 “메신저에 가까웠던 버블이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종합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 커머스에 라이브를 더하면: 2019년 6월 출시된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 위버스는 일찌감치 1위 자리를 굳혔다. 방탄소년단(BTS)이 소속된 빅히트 뮤직을 중심으로 쏘스뮤직·플레디스·어도어 등 하이브 산하 다양한 IP들이 위버스에 모였다. 여기에 블랙핑크가 속한 YG 등이 합류하면서 플랫폼 파워가 커졌다. 위버스 내 팬덤 커뮤니티는 80개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246개국(지역)에서 누적 다운로드 약 1억건을 기록했다.

위버스는 아티스트의 공식 콘텐트를 한 곳에서 모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위버스

위버스는 아티스트의 공식 콘텐트를 한 곳에서 모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진 위버스

위버스의 무기는 커뮤니티와 커머스의 결합이다. 기존 팬클럽을 플랫폼에 단순히 옮겨오는 데 그치지 않고, 팬덤 플랫폼 이용자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글로벌 커뮤니티를 구축했다. 여기에 각종 굿즈를 판매하는 커머스(위버스샵)를 얹었다. 아미 멤버십(2만 5000원)을 구매하면 1년간 BTS 공연 선 예매가 가능하고 멤버십 전용 게시물을 볼 수 있는 방식. 올 상반기엔 신규 구독 서비스도 내놓을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뉴진스 데뷔 때 구독형 앱(포닝)을 시도한 바 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위버스컴퍼니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2213억원. 2021년 연 매출(2394억원)에 육박한다. 2021년 네이버 V라이브 사업부를 흡수하면서 하이브(55.5%)와 네이버(44.5%)가 지분을 나눠갖고 있다. 강신규 연구위원은 “2021년 기준 SM 매출이 7000억 원대에 머문 반면 하이브는 1조원을 돌파하고 지난해 매출 예상액은 1조 6000억원 수준”이라며 “V라이브 서비스 이관도 끝나 결집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시장은

팬덤 플랫폼들은 K팝을 넘어 시장 확대를 모색 중이다. SM 디어유는 지난해 배우·스포츠 스타·유튜브 크리에이터 등을 위한 팬덤 플랫폼을 별도로 출시했다. 위버스도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등 해외 아티스트에 이어 박보영·김선호 등 배우 입점에 공들이는 중.

엔터 기업들이 플랫폼 확장에 나서는 사이, 팬덤 플랫폼 구축을 도와주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도 등장했다. 위버스 출신들이 창업한 비마이프렌즈는 지난해 4월 SaaS형 솔루션 ‘비스테이지’를 출시했다. 스타나 스포츠구단 등이 특정 팬덤 플랫폼에 입점하지 않고도, 자신만의 플랫폼을 구축하며 관련 데이터를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솔루션이다. 대형 플랫폼에 종속될 필요 없이 팬덤 비즈니스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은 모델이다. 비마이프렌즈는 지난달 미국 대형 에이전시 UTA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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