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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범죄" 한목소리...푸틴 처벌 특별재판소 추진 가시화

중앙일보

입력

전쟁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우크라이나인들을 치유하기 위해선 전후 재건과 함께 러시아군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러시아 수뇌부에게 전쟁 책임을 묻는 ‘뉘른베르크식’ 특별재판소 설치가 힘을 얻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노인이 지난 12일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 부차에 있는 대규모 무덤 사이를 걷고 있다. 이곳에는 러시아군이 점령했을 때 사망된 신원 미상의 사람들이 매장되어 있다. AFP=연합뉴스

한 우크라이나 노인이 지난 12일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 부차에 있는 대규모 무덤 사이를 걷고 있다. 이곳에는 러시아군이 점령했을 때 사망된 신원 미상의 사람들이 매장되어 있다.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미국 CNBC에 따르면 안드리 코스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조지타운 로스쿨을 방문해 “지난 1년 동안 러시아군이 자행한 전쟁범죄는 약 6만6000건이 넘었다”며 “특히 러시아군에 점령됐다가 해방된 부차·이르핀·이지움·헤르손 등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고문·성폭력·약탈·살해 등 잔학 행위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러시아 전쟁범죄 기소를 위해 특별재판소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프랑스·영국·독일 등 유럽 주요 국가가 도움을 주기로 합의했고, 미국 지원도 거의 얻었다”고 덧붙였다.

오는 23일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 방문을 추진 중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방문이 성사될 경우 고위급 회의 연설에서 특별재판소 설치 결의안 채택을 끌어내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1946년 9월 30일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에서 2차대전 전범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1946년 9월 30일 독일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소에서 2차대전 전범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이 재판부의 판결을 듣고 있다. AP=연합뉴스

특별재판소는 2차 세계대전 뒤 나치 전범을 처벌한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1945~46년)처럼 전쟁범죄에 가담한 관계자에게 광범위한 처벌을 내리기 위한 기구다. 특히 푸틴 대통령,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등 러시아 수뇌부를 기소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앞서 지난해 4월 초 젤렌스키 대통령이 특별재판소 설치를 국제사회에 처음 제안했다. 당시 부차·이르핀 등 수도 키이우 외곽도시에서 러시아군이 한달여 만에 퇴각한 후,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이뤄진 현장(집단매장지·고문지 등)이 발견되면서 러시아군의 전쟁범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차 학살은 중대한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책임을 묻겠다”고 했고, 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석검사는 “우크라이나는 거대한 범죄 현장”이라고 했다.

당초 특별재판소에 대한 시각은 회의적이었다. 미국·영국 등 서방에선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수뇌부를 처벌하는 작업을 시작하면, 러시아를 자극해 평화협상 가능성이 차단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우크라이나 당국과 함께 러시아 전쟁범죄를 조사하고 있는 ICC는 존재 의의가 사라지거나 역할이 줄어들 수 있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ICC는 국제사회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해당 국가가 기소할 수 없을 때, 개인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유일한 상설 국제기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관저에서 내각 인사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의 관저에서 내각 인사들과 화상회의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그러나 전쟁의 장기화로 전쟁범죄가 계속 늘어나면서 ICC보다 나은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특히 러시아가 ICC 비회원국이라서 기소를 해도 집행할 강제력이 없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해도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같은 기존 체제의 한계가 알려지면서 특별재판소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말 “유엔이 뒷받침하는 특별재판소 설치를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발표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이와 관련한 결의안을 채택했다.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러시아 수뇌부를 기소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제임스 클리버리 영국 외무장관과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 등도 최근 찬성 뜻을 표명했다.

다만 특별재판소에서도 푸틴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모든 재판소는 합법성이 결여됐고, 용의자의 인도를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네덜란드 라이덴대의 세실리 로즈 국제법 교수는 “러시아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지 않는 한, 푸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급 지도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선 그들이 러시아를 벗어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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