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의사조력자살’ 전향적으로 볼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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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한국건강학회 이사장

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한국건강학회 이사장

“의사 조력자살을 ‘조력 존엄사법’이라는 이름으로 합법화하는 것은 자살을 포장하는 것이다.” “개인의 신념과 반대된다는 이유로 배척하지 말고 소수가 원하더라도 꼭 필요하다면 존중하고 수용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지난해 국회에서 조력 존엄사에 대한 찬반 목소리가 토론장을 달궜다. 안규백 민주당 의원이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연명 의료결정법)’ 개정안으로 발의한 조력 존엄사 법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법 개정안의 취지는 분명하다. “말기 환자로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본인이 희망하는 경우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신이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의사 조력자살을 합법화하자는 법안이다.

10명 중 8명 안락사 찬성하는데
비참한 죽음 방관해온 한국사회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확대를

의사조력자살이 존엄사 그래픽 이미지. [일러스트=김지윤]

의사조력자살이 존엄사 그래픽 이미지. [일러스트=김지윤]

하지만 천주교와 대한의사협회는 반대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생명 경시 풍조와 오남용의 위험을 우려했고, 호스피스 확대 등 인간적 돌봄 정책과 법률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생명 중시와 의료윤리 때문에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노년 유니온’ ‘내 생애 마지막 기부 클럽’ 등 노인단체들은 적극적 안락사법 도입으로 자기 결정권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이 발의되지 않았다면 국민의 웰다잉(Well-dying)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했을까. 정부와 관련 기관은 물론 종교계·의료계·시민단체 등 그 누구도 비참한 죽음의 현실을 방관했던 잘못을 반성해야 한다.

2019년 서울신문, 2021년 서울의대, 2022년 한국리서치 등 세 번의 여론조사에서 의사 조력자살이나 안락사에 대해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이 찬성했다. 국민의 웰다잉을 위한 정책이 지지부진하면서 크게 실망한 국민의 의사가 높은 찬성률에 반영됐다. 비참한 죽음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고령화로 노년 인구가 급증하자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고 있다. 하지만 익숙한 집보다는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죽음의 의료화’는 여전하고 고독사·간병살인·동반자살 등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런 비극적인 현실을 접하면서 차라리 안락사를 선택하고 싶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어쨌든 죽음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웰다잉 문화를 만들면서도 생명 경시와 오남용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절차와 정책을 만들어 갈 기회의 문이 열렸다.

과거에 필자는 호스피스와 연명 의료 결정 확대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며 의사 조력자살의 대안으로 광의의 웰다잉 정책과 법률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광의의 웰다잉이란 호스피스와 취약계층 말기 환자의 간병 지원을 확대하고 말기 환자에게 유산 기부, 마지막 소원 이루기, 정신적 유산 정리, 생전 장례식 등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연명 의료결정법이 통과되고 6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시기상조라거나 광의의 웰다잉이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은 더는 실효성이 없다. 이제는 광의의 웰다잉 제도화를 병행해야 한다. 다행히 국민의 80%가 찬성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약자가 사회적 타살 대상이 되지 않도록 극심한 통증, 간병 부담, 우울증, 존재감 상실 등 전인적 고통을 해소해 주는 사회와 국가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종교계와 의료계는 광의의 웰다잉을 위한 정책 발굴, 입법화, 예산 마련 활동에 동참해 힘을 실어줘야 한다.

대한민국은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국민이 함께 살아가는 민주공동체다. 해결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에 부닥쳤을 때 말기 환자의 남은 삶을 완성으로 마무리하려는 자발적이고 합리적이며 진정성 있는 선택을 인정해야 한다. 마지막 삶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이유다.

지난해 9월 누벨바그 영화의 거장인 프랑스 장뤼크 고다르 감독이 의사 조력자살로 타계하자 프랑스 정부는 의사 조력자살 합법화를 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 공개 토론을 추진하기로 했다. 의사 조력자살 법제화는 곧 다가올 예견된 미래다. 준비하지 않다가 쓰나미를 맞이할까 두렵다. 정부·국회는 물론 관련 기관과 단체가 다 함께 광의의 웰다잉 문화를 만드는 노력을 서둘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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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호 서울대 의대 교수·한국건강학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