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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성탁의 시선

MZ 다음 알파세대, 그들 세상은 행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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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김성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내가 주인공' 초등학생 세대

김성탁 논설위원

김성탁 논설위원

최근 출근길 라디오에서 새로운 세대 얘기를 들었다. MZ세대에 이은 알파(α)세대다. 1980~90년대 태어나 30~40대가 된 MZ세대의 자녀로, 요약하면 지금 초등학생들이다. 1970년대생 X세대에 이은 YZ세대를 '밀레니얼'의 영문 앞글자를 따 MZ세대로 불렀다. 알파벳이 끝났으니 처음으로 돌아갔는데, 새로운 출현을 강조하기 위해 알파를 쓴다고 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모습. 연합뉴스

 소비자 트렌드 전문가인 전미영 박사가 알파세대에 대해 들려준 내용은 흥미로웠다. 예전엔 전교 1등이면 스포츠를 못해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았고 ‘엄친아’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곤 했지만, 알파세대는 자신을 주인공이라 여긴다고 한다. 모든 것을 잘하는 대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었다.

 이 세대가 꼽는 ‘최고의 하루’도 이색적이다. 하교 후 친구들과 천원 샵 형태의 매장에서 소소한 구매를 하고 네 컷 사진을 찍은 뒤 마라탕으로 저녁을 먹고 버블티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이다. 전 박사는 MZ세대 부모가 과거와 다른 교육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기존 국·영·수 위주 사교육 외에 코딩을 가르치고 특히 경제 교육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용돈을 준 뒤 가족 식사에서 더치페이를 하도록 하면서 돈에 대한 관념을 심어준다는 사례가 소개됐다.

 간신히 X세대 분류에 걸쳤으면서 스스로 X세대의 특징을 가졌는지 확신하지 못한 세대로서, 새 세대의 등장이 반갑고 신기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이 사는 세상은 과연 행복할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알파세대의 선두가 막 중1에 입학한다는 대목에서부터 가슴이 답답해졌다.

사교육, 집값…여건은 그대로

 지역별 사정이 달랐을 수 있지만 X세대에겐 중학교 때부터 매일 학원에 다니던 기억은 많지 않다. 고교 평준화가 실시되고 본고사는 사라진 시대였다. 대입 학력고사가 암기 위주여서 창의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 속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이후 사교육 시장은 팽창했다. 요즘 중학생들의 방과 후 일상은 대개 학원 가기일 것이다. 교육 당국이 무슨 말을 하든, 중학교 때 수학·과학 등 어려운 과목의 선행을 해 놓지 않으면 고교 내신 점수 따기가 힘들다고 학부모들은 여긴다.

 알파세대가 이르면 중학교부터 시작되는 한국의 입시 전선에 발을 들여놓고도 네 컷 사진과 버블티 수다를 즐기는 ‘소확행’을 만끽할 수 있을까. 고등학생이 되면 수시와 정시로 나뉜 대입을 준비하려고 내신은 물론 수행평가 발표도 신경 써야 한다. 상대평가인 내신 경쟁은 치열하고 수능 준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은 학기 중엔 과목별 내신 학원을 돌고, 방학이면 수능 맞춤형 특강으로 바쁘다.

 알파의 부모인 MZ의 생각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면 변화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 MZ는 이런 대입 경쟁을 지나 취업 전쟁도 치른 세대다. 대기업 정규직 취업자라면 형편이 낫겠지만, 대다수는 맞벌이해도 남는 게 별로 없음을 경험 중일 것이다. MZ세대 중엔 집값 폭등에 불안해하다 ‘영끌’ 매수로 고금리 이자를 걱정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부동산은 꿈도 꿀 수 없어 코인과 주식에 투자했다가 손실이 언제 메꿔질지 한탄하는 경우도 많다.

 양극화 속 계층 이동 사다리가 얼마나 오르기 어려운지 아는 이들이 자녀를 사교육에서 해방시키고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도전하라고 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경제 교육 역시 자산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집값·전셋값을 마련하려면 수입을 잘 관리하고 투자하는 법을 일찍 알려줘야 해선 아닐까.

기성세대가 시스템 바꿔줘야

 알파세대가 사는 세상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이 이대로라면 그렇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1타 강사들이 소유한 건물이 즐비한 서울 대치동이나 비슷한 각 지역 학원가에 모든 학생을 몰리게 하는 학교 교육과 대입 제도가 그대로라면. 학벌에 따라 취업의 질이 달라지고 대기업 정규직이 아닐 경우 임금과 처우가 열악하다면.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 수도권에 살아야 하는데 거주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다면….

 초기 X세대가 대입을 치르던 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화제였다. 30년가량 지난 지금은 ‘반드시 성적순으로 행복한 건 아니다’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TV 프로그램에서 한국에 수학여행을 온 미국 10대들은 문화와 음식이 훌륭하고 정을 느꼈다고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한 학생은 “한국 사람들이 일을 조금 덜 하면 좋겠다. 건강과 행복을 희생하는 것 같다”고 했다. 기성세대가 지금 할 일을 해야 아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다. 베타(β)세대부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