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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대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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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위문희 기자 중앙일보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위문희 정치부 기자

2015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상근부대변인은 7명이었다. 각 최고위원들이 자기 사람을 내정해달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는 친문과 비문 간 분열 양상이 극심해 ‘봉숭아 학당’ 같다는 소리를 들었다.

2021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캠프는 대변인만 30명이 넘었다. 경선 당시 각 캠프 대변인단을 전부 대변인으로 임명하면서다. 내부에서도 “통제가 안 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한때 대변인을 해촉하는 방안이 검토됐다. 나중에 공보단장과 3명의 수석대변인만 논평과 브리핑을 발표할 수 있도록 교통정리를 했다.

2023년 민주당의 대변인단은 12명이다. 수석대변인 1명과 당대변인, 원외대변인, 상근부대변인 3명씩, 원내대변인 2명을 합쳐서다. 각 수석대변인, 원내대변인 2명씩과 원외대변인 1명, 4명의 부대변인을 두고 있는 국민의힘보다 많다. 민주당은 당대표와 원내대표 일정을 공개하면서 당번 대변인도 공지한다. 민주당에서 당과 선거캠프 대변인만 8번 역임한 우상호(4선) 의원조차 “대변인을 논공행상식으로 남발하는 건 잘못됐다”고 말한다. 정치가 언론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대변인 자리를 선호하게 된 분위기 탓이다. 특히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는 비례대표 의원들 사이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대변인 자리 쟁탈이 치열하다.

대변인은 주요 회의에 배석해 결정권자인 당대표와 지도부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핵심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박수현 초대 대변인은 대통령의 말을 적은 수첩을 잃어버릴까 봐 양복에 실로 매달기까지 했다. 대통령 입의 무게와 책무였다. 민주당 대변인 사이에서도 “요일별로 정해놓고 일을 하니 현안에 대한 밀착도가 떨어진다”는 소리가 나온다. 원로 정객들은 “옛날엔 대변인이 1명이라 말의 통로가 딱 일원화되고, 딴말이 서로 안 나왔다. 대변인의 권위가 있었다”고 말한다.

대변인을 부처 공보실장 수준으로 여겨도 문제다. 용산 대통령실의 대변인은 5개월 넘게 공석이다. 정치권에서 역대 명대변인으로는 민주자유당 박희태 대변인과 평화민주당 박상천 대변인 콤비가 꼽힌다. 그들이 주고받은 촌철살인(寸鐵殺人) 논평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은 대변인 정치의 실종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