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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구미 3세 '아이 바꿔치기' 무죄…풀려난 친모가 한 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1년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3세 여아 사망사건’과 관련, 법원이 숨진 여아 친모가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친모는 사체를 은닉하려다 중도에 포기한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받아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나게 됐다. 사건 발생 2년여 만이다.

대구지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상균)는 2일 미성년자 약취와 사체은닉미수 혐의로 기소된 A씨(50)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게 증명되기 어렵다”며 미성년자 약취 혐의는 무죄 판결했다. 사체은닉 미수 혐의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숨진 여아의 생모로 알려진 A씨의 첫 재판이 열린 2021년 4월 22일. 김천지원에 도착한 A씨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구미 3세 여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숨진 여아의 생모로 알려진 A씨의 첫 재판이 열린 2021년 4월 22일. 김천지원에 도착한 A씨가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친자관계 맞지만 바꿔치기까지 인정되는 건 아냐”

재판부는 “6개월 이상 병원 관계자, A씨의 딸 B씨(24)의 전 남편, A씨의 예전 직장동료 등을 증인으로 세우고 유전자(DNA) 검사를 하는 등 추가 심리를 진행했다”며 “피고인과 숨진 여아가 친자 관계라는 사실은 거듭 확인했지만, 이것만 갖고 아이를 바꿔치기했다는 사실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아이를 바꿨다는 직접적인 증거나 다른 아동이 발견되지 않았고 검찰이 주장하는 시점에 바꿔치기가 이뤄졌다는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피고인 범행 동기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며 “DNA 감식 결과 외에 공소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해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고 했다.

재판부가 판결 내용을 전달하는 동안 A씨는 주저앉아 흐느꼈다. 미성년자 약취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난 직후에는 방청석에서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석방 절차를 마친 A씨는 검정색 패딩과 흰색 운동화 차림으로 대구지법에서 걸어나와 취재진에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것도 없다. 절에 가서 기도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제가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아무래도 절에 가서 100일 기도라도 드려야하지 않겠나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2021년 8월 17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열린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친모' A씨가 법원을 떠나고 있다. 뉴스1

2021년 8월 17일 오후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에서 열린 경북 구미 3세 여아 사망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8년형을 선고받은 '친모' A씨가 법원을 떠나고 있다. 뉴스1

징역형 선고된 1심 뒤집은 대법원 “추가 심리 필요”

구미 여아 사망사건은 1·2심 유죄 판결에도 아이를 바꿔치기한 수법이나 시기, 공범 여부 등 의문점이 많았다. 대법원이 앞선 판결을 뒤집고 사건을 돌려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6월 파기환송 당시 대법원은 “피고인의 행위가 약취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목적과 의도, 행위 당시의 정황, 행위의 태양(양태)과 종류, 수단과 방법, 피해자 상태 등에 추가적인 심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건을 둘러싼 미스터리는 2021년 2월 경북 구미시 한 집에서 3세 여아가 홀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20대 엄마가 집에 아이를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으로 전해졌지만, DNA 검사 결과 외할머니인 A씨가 친모로 드러났다.

이런 반전은 여러 가지 의문점을 낳았다. 우선 ‘숨진 아이의 친부가 누구냐’에 관심이 쏠렸다. A씨의 딸 B씨가 친모로 알려졌을 때 친부는 당연히 B씨와 2020년 이혼한 전 남편으로 여겨졌다.

경찰은 친부를 찾기 위해 주변 남성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DNA 검사를 진행했다. 구미와 인근 지자체 산부인과 100여 곳도 압수수색했지만 단서는 발견하지 못했다. A씨가 B씨의 딸과 자신의 딸을 바꿔치기했다면 B씨가 낳은 자식이 어디에 있는지도 풀어야 할 숙제였다. 경찰은 B씨가 낳은 자식의 행방을 찾는 데도 수사력을 쏟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DNA 검사 결과에도 A씨는 “딸 낳은 적 없다”

A씨는 DNA 검사 결과가 나온 뒤에도 “나는 딸을 낳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이 진행한 DNA 검사와 파기환송심에서 이뤄진 추가 검사까지 합치면 모두 다섯 차례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는 모두 같았다.

다만 A씨는 자신에게 적용된 또 다른 혐의인 (여아) 사체은닉미수는 인정했다. 지난해 2월 B씨가 살던 집에 홀로 남겨져 숨진 채 발견된 아이를 이불과 종이박스에 넣어 버리려고 시도한 혐의다. A씨는 “시신을 상자에 담아 어딘가로 옮기려고 했지만, 갑자기 바람 소리가 크게 나 공포감을 느끼고 시신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상균 부장판사는 “사라진 여아와 사망한 여아가 서로 다른 존재라면 사라진 아이 행방을 찾지 못해 안타깝다. 국가에서 찾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무죄 결론이 나왔지만, 피고인이 말한 것이 모두 진실인지, 아니면 피고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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