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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죄수, 마약 취한 좀비 같았다" 우크라군이 전한 '충격 전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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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들은 동료 시신을 밟고 전진했다. 끝없는 파도 같았다.”

우크라이나 군인 안드리는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 소속 용병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최근까지 러시아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해 온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지난 19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한 벽에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로고 벽화가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9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한 벽에 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 그룹의 로고 벽화가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죄수출신 용병 육탄 돌격…총알받이 전술  

미국 CNN 방송은 1일(현지시간) 바그너 그룹과 바흐무트 전투를 벌인 안드리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경험담을 전했다. 이들은 오랜 전투 끝에 살아남았지만, 동료가 죽어도 마약에 취한 듯 무모하게 돌진하는 바그너 그룹 용병들의 ‘인해전술’에 공포를 느꼈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러시아 육군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군사 훈련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러시아 육군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군사 훈련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안드리가 묘사한 바그너 그룹 용병의 전투 방식은 단순하다. ‘육탄 돌격’이다. 바그너 그룹은 선봉에 죄수들로 구성된 신입 용병들을 내세웠다. 신입 죄수 용병들은 10명 단위로 투입돼 30m 정도 전진해 참호를 팠다. 이들이 우크라이나군의 공격에 숨지면 10명을 또 투입해 또다시 30m를 전진하는 방식으로 점령지를 늘려가는 식이다.

안드리가 봤을 때 신입 용병들은 군사전술에 대한 지식도 거의 없고 개인 군사 장비도 매우 빈약했다. 바그너 그룹은 선봉 부대의 탄약이 소진되거나 부대원이 모두 총에 맞아 쓰러지면 그제야 더 경험이 있는 전문 전투부대를 측면에서 투입했다. 말 그대로 ‘총알받이’ 전술을 쓴 셈이다. 실제로 최근 탈주한 바그너 그룹 소속 전직 용병 안드레이 메드베데프(26)는 최근 CNN에 “죄수들은 마치 고기처럼 대포의 총알받이가 됐다”고 폭로했다.

바그너 그룹의 작전에 우크라이나군은 수적 열세에 내몰리기 일쑤였다. 순식간에 우크라이나군 20명이 바그너 용병 200명을 상대하는 구도가 형성됐다. 안드리는 “10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우기도 했다”며 “(적들은) 그저 끊임없는 파도처럼 들이닥쳤다. 들고 있던 AK-47 자동소총의 총구가 과열돼 계속 교체하며 싸워야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총 계속 쏴도 파도처럼 와…초현실적 공포”

우크라이나군의 총에 맞아도 바그너 그룹 병사들은 끊임없이 돌진했다. 안드리는 이 전투를 좀비 영화의 한 장면에 빗대며 “그들은 전우들의 시체를 밟으며, 쌓인 시신 위로 타고 올라왔다”며 또 “이들이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마약을 복용한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한 벽에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 무장한 채 서 있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바그너 그룹-러시아 기사들'이란 문구도 아래에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13일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한 벽에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용병들이 무장한 채 서 있는 모습을 그린 벽화가 그려져 있다. '바그너 그룹-러시아 기사들'이란 문구도 아래에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안드리와 동료들은 당시 상황을 초현실적이라고 묘사하면서 큰 공포를 느꼈다. 안드리는 “기관총 사수들은 총을 계속 쏘느라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며 “(바그너 용병들은) 총을 맞아도 곧바로 쓰러지지 않고 피를 흘리고서야 넘어졌다”고 말했다. 안드리는 당시 가진 총알과 수류탄을 모두 써 꼼짝없이 당할 거라 생각하던 찰나, 바그너 그룹이 퇴각을 결정해 목숨을 건졌다.

러시아는 바그너 그룹 죄수 용병들이 가진 자유에 대한 희망을 이용해 이들을 전투에 내몰고 있다. 바그너 그룹을 세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죄수 출신 용병들에게 러시아 직장인 평균 월급의 갑절에 가까운 급여와 함께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6개월간 복무하고 살아남으면 죄를 사면해준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안드리가 속한 부대가 생포한 바그너 그룹의 한 용병은 “엔지니어였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마약을 팔다가 수감됐다. 변호사를 꿈꾸는 딸의 앞날에 내 범죄기록이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바그너에 지원했다”며 “첫 번째 전투 이후에야 내가 총알받이였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인해전술 앞세운 러, 동부 돈바스 재점령 시도

지난달 31일 러시아 육군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군사 훈련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1일 러시아 육군 군인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에서 군사 훈련을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바그너 그룹의 전투 방식은 최근 러시아가 시도하는 인해전술을 그대로 보여준다. 뉴욕타임스(NYT)는 “러시아는 지난 몇 달간의 대규모 폭격에도 동부 격전지에서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하자 최근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는 인해전술로 바꿔 전투를 벌이고 있다”며 “이에 러시아군 사상자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큰 피해를 보더라도 전투성과만 내면 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군은 바하무트를 비롯해 우크라이나에 뺏긴 동부 돈바스(도네츠크+루한스크) 지역 도시들을 탈환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현재 루한스크주 대부분 지역과 도네츠크주의 남쪽 절반을 장악한 채 북부 지역으로 진격을 시도하고 있다.

한나 말랴르 우크라이나 국방차관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러시아군이 도네츠크 북부 도시 리만 점령도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만은 지난해 10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로부터 되찾은 곳이다. 북동부 하르키우주와 연결된 교통의 요지로 이곳이 러시아에 점령된다면 동부 전선의 전황에 큰 변화가 오게 된다.

러 이스칸데르에 아파트 붕괴…수십명 사상

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너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의 아파트에서 구조대원들이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무너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의 아파트에서 구조대원들이 건물 잔해를 수색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군은 이날 밤 리만 남쪽 도시 크라마토르스크를 공습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미사일 공격으로 도시 아파트 건물이 무너져 최소 3명이 숨지고 20명이 다쳤다”며 “해당 미사일이 러시아의 순항미사일 ‘이스칸데르-K’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화상 연설에서 “동부 전선 상황이 힘들어지고 있다”며 “러시아를 멈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을 탱크와 전투기, 장거리 미사일로 물리치는 것”이라며 서방에 무기 지원을 늘려줄 것을 재차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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