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항공모함과 이지스 구축함 등 미국 해군의 주력함들이 부품을 돌려막고 정비가 지연되는 등 심각한 악순환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반도와 대만해협에서 군사적 긴장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유사시 미국이 해군력을 제때 제대로 투사할 수 있을지 우려마저 나온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 회계감사원(GAO)이 미 해군의 니미츠급 항모 등 주력함 151척의 지난 10년간 운영현황(2011~2021 회계연도)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GAO가 공개한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은 항모 이외에 아메리카급ㆍWASP급 강습상륙함,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등 10종이다. 이들 함정의 수는 2022년 기준 미 해군 전체 함정 292척 가운데 약 절반에 해당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10개 함종 중 9개 함종에서 새 부품을 구하지 못해 다른 함정의 부품을 재활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방위산업체들이 더는 부품을 생산하지 않거나 원자재 부족 등으로 생산이 지연된 데 따른 결과였다.
정비 지연 기간도 10년 새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1척당 평균 5일이던 정비 기간은 19일로 늘었다. 특히 2019 회계연도의 경우 평균 40일 지연되는 심각한 지체 현상이 발생했다.
F-35 항모 추락 등 사고 잦아
이는 최근 미 해군 함정들의 잦은 충돌 사고 등과 관련이 있다. 일례로 지난해 1월 남중국해에서 F-35C 스텔스 전투기가 항공모함(칼 빈슨함)에 착륙하던 중 갑판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해 갑판이 손상됐다.
또 지난 2017년에는 서태평양을 관할하는 미 제7함대에서만 이지스함 충돌 사건이 2건 발생했다. 2017년 6월 이지스 구축함(피츠제럴드함)이 일본 남쪽 해상에서 대형 컨테이너선과 충돌해 함교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됐고, 이어 석 달 뒤인 2017년 9월에는 이지스 구축함(매케인함)이 싱가포르 동쪽 해상에서 유조선과 충돌해 우현 아래가 움푹 들어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잇따른 두 사고로 숨진 승조원만 17명에 달했다.
당시 미군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보고 미 해군 수뇌부를 경질하는 등 고강도 조치에 나섰지만, 근본적으로 원인을 개선하긴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다. 함정을 운용할 병력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훈련과 임무 투입이 반복되다 보니 피로 누적 등에 따라 운항 중 사고가 일어난다는 얘기였다.
이와 관련,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병력 부족과 사고가 중첩되다 보니 임무 시간은 늘어나는데 정비와 교육 훈련할 시간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결국 이같은 상황은 또 다른 사고를 부르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력함의 유지비도 크게 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함정의 총유지비는 10년 새 17.3%(25억 달러ㆍ약 3조 600억원) 늘어나 171억 달러(약 20조 8500억원)에 달했다. 이중 정비 비용이 62억 달러(약 7조 5000억원)로 같은 기간 24%(12억 달러ㆍ약 1조 4000억원)가 증가했다.
보고서는 “함정들의 항행 시간 자체가 줄어든 가운데 정비가 늦어진 탓에 함정의 상태가 더 나빠졌고 이에 따라 다시 정비ㆍ운영비용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일어났다”고 진단했다.
이같은 상황은 이미 양적으로 중국 해군력에 추월당한 미국 입장에서 불안한 요소다. 중국은 지난 2015년 함정 수에서 미국을 넘어섰으며 계속 격차를 벌리고 있다.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중국 함정 수는 348척, 미국은 296척이다.
이에 대해 양 위원은 “항모전단 규모나 전력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 여전히 우위에 있지만, 중국 해군력의 엄청난 양적 증가에 대응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 해군력의 약화는 한반도와 대만해협 유사시 미국이 충분한 전력을 보낼 수 없다는 경고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