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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정의용 "내가 북송결정, 文엔 보고만"...檢도 그렇게 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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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문재인 정부의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정의용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내가 탈북민 북송을 결정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정 전 실장의 이 같은 진술은 문 전 대통령까지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에겐 혐의 연루점이 없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수사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정의용(왼쪽) 전 국가안보실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 서훈(오른쪽) 전 국정원장. 중앙포토

정의용(왼쪽) 전 국가안보실장과 문재인 전 대통령, 서훈(오른쪽) 전 국정원장. 중앙포토

‘최종 책임자’ 정의용… “文에 북송 결정 내리고 보고”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부장 이준범)는 전날에 이어 1일에도 정 전 실장을 소환해 탈북민 2명의 귀순 의사를 무시하고 강제로 북한에 돌려보낸 혐의(직권남용)를 조사했다. 정 전 실장은 검찰 조사에서 “국가안보실과 국정원 등 관계기관 보고를 종합한 뒤, 내가 최종 의사결정을 했다. 정상적인 절차였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문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북송 결정을 내린 이후에 보고만 드렸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검찰도 정 전 실장을 이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보고 있다. 특히 탈북민들이 타고 있던 어선을 나포하기 전부터 우리 정부가 ‘북송 결론’을 내리고, 귀순 의사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점 등을 집중 추궁했다. 어선 나포 하루 전인 2019년 11월 1일, 청와대는 국정원에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 북송 사례’에 대해 문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 탈북민에 대한 국정원 합동조사가 이례적으로 조기 종료된 배경에도 서훈 전 국정원장보다 정 전 실장의 책임이 더 컸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나포 시점부터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추방하기까지 주요 의사결정마다 정 전 실장의 북송 기조가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실장은 “해당 탈북민들이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동해상에서 수 차례 도주 시도를 하는 등 귀순 진정성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7월 입장문에서도 “희대의 엽기적 살인마들로 애초에 귀순할 의사가 없었다. 법과 절차에 따라 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의 결정을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남북관계 신경 쓴 文…노영민은 기소 대상서 빠질 듯 

탈북 어민 2명은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이들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인계했다. 사진 통일부

탈북 어민 2명은 2019년 11월 7일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이들은 몸부림을 치며 저항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인계했다. 사진 통일부

법조계에선 문 전 대통령의 남북 관계 개선 노력을 잘 아는 정 전 실장이 민감한 탈북민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려다 범죄한 걸로 의심 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공안검사 출신 변호사는 “탈북민도 헌법상 우리 국민과 같은 법적 지위를 가진다는 사실을 모르진 않았을 것이고, 강제북송할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추측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 사건의 범행 동기로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를 꼽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1월 5일 ‘인원 인계’를 북측에 통지했는데, 같은 날 문 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아세안 정상회의 초청 친서를 보냈다.

앞서 검찰은 김유근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김준환 전 국정원 3차장, 김연철 전 통일부 장관,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함께, 김영식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도 소환조사했다. 김 전 비서관에겐 당시 법무부가 ‘강제송환은 법률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내용의 검토서를 냈는데도 청와대가 북송을 강행한 경위를 확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정 전 실장이 조사에 성실히 임했고, 증거인멸 가능성이 낮은 점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기로 했다. 또 노 전 비서실장은 안보 현안에서 별다른 권한이 없었다는 이유로 사법처리 대상에서 빠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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