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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관 돼 날 평가하라"...尹 1만자 '깨알 지시' 세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여러분도 면접관이 되어 저를 평가해 주세요.”

올해 업무보고는 장관과 독대한 지난해와 달리 대국민 보고·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방식의 아이디어를 낸 장본인이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일 “윤 대통령의 제안에 참모들은 대통령 생각이 날 것 그대로 공개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기존 틀을 깨는 방식을 원한 윤 대통령이 거듭 토론식 업무보고를 주문하면서 “저도 업무보고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드릴 테니, 여러분도 면접관이 되어 제 생각을 평가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한다.

이후 18개 부처, 4개 위원회, 4개 처, 1개 청의 업무보고(2022년 12월 21일~1월 30일)는 부처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들이 주제별 토론을 한 후 윤 대통령이 원고 없이 마무리 발언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마무리 발언 전문을 언론에 공개하고, 업무보고 전체 영상을 KTV(한국정책방송원)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것도 윤 대통령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시나리오에 따른 화석화된 회의 방식을 윤 대통령이 제일 싫어한다”며 “변화된 업무보고 방식은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해 업무보고 발언 안에 윤 대통령의 국정 인식과 국정 운영 방향이 모두 담겨있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정책방향 업무보고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권영세 통일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입장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정책방향 업무보고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권영세 통일부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입장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①절박감

첫 업무보고였던 지난해 12월 21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윤 대통령은 “위기를 수출로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달 27일 산업통상자원부·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 때는 “정부와 민간이 정말 한 몸이 돼서 뛰라”고 했고, 올해 들어서도 “해외 수주에 적극 협력해달라”(1월 3일 국토교통부·환경부 업무보고)며 모든 부처의 산업부화를 강조했다.

규제 개혁을 위해 혁신적 사고도 주문했는데, 지난달 4일 농림축산식품부·해앙수산부 업무보고에서 “기존에 있는 법들을 아주 신줏단지처럼 모시고 절대 손 못 대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업무보고는 경제위기 속 혁신의 의지를 갖고 민생을 제대로 챙기겠다고 다짐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②자신감

집권 2년 차를 맞아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발언으로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도 부각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검사생활만 했기 때문에 국정운영에 서툴지 않을까 우려했던 사람들에게 '아니다. 전 부처를 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업무보고였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 11차례의 업무보고 마무리 발언을 통해 '깨알 지시'를 내렸는데, 국정철학을 부처마다 깊숙이 뿌리 내리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참모들의 중론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 참석에 앞서 재학생?재직자의 직무훈련을 참관하며 인사말 뒤 박수받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공과대학교에서 열린 제1차 인재양성전략회의에 참석에 앞서 재학생?재직자의 직무훈련을 참관하며 인사말 뒤 박수받고 있다. 연합뉴스

③소통 총량

새해 업무보고가 대통령의 메시지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윤 대통령이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시도한 도어스테핑(약식 문답)은 ‘MBC 기자-비서관 공개 설전’ 여파로 지난해 11월 21일로 중단된 상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각 부처의 현안에 대해 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함으로써 소통의 총량을 유지한 효과도 봤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마무리 발언을 분석해 보면 총 11차례로, 평균 18분가량을 사용했다. 짧게는 10분(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에서 길게는 35분(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을 할애했다. 대통령실이 업무보고가 끝난 뒤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마무리 발언 전문을 보면 글자 수는 공백을 포함해 평균 5500여자였다. 지난달 27일 통일부·행정안전부·국가보훈처·인사혁신처 업무보고에선 9900여자를 기록했다.

다만 대본 없이 세세하게 지시하는 윤 대통령의 다변은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외교부·국방부 업무보고에서는 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상황을 전제하긴 했지만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게 대표적이다. 27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선 “남쪽이 훨씬 잘 산다면 남쪽의 체제와 시스템 중심으로 통일이 되는 게 상식”이라고 발언했는데, 이후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흡수 통일을 뜻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하는 일도 있었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마무리 발언이라는 게 하달식 일방 소통이라는 한계점도 있다”며 “더 안정감 있는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기 위해 발언 수위 등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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