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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푼 줍쇼' 노인 영상이 통하네...기부 1위 나라의 '틱톡 구걸'

중앙일보

입력

영상에 등장한 한 고령의 여성은 옷을 입은 채 더러운 강물에서 몸을 씻은 뒤 웅크린다. 이 모습이 생방송되는 화면엔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디지털 선물이 쏟아진다. 인도네시아에 번지고 있는 '틱톡 구걸' 영상이다.

31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인도네시아에선 최근 한 달간 소셜미디어 틱톡에 구걸하는 영상이 눈에 띄게 늘어 당국이 단속에 나섰다. 이들 영상 대부분엔 노인이 등장하며, 더러운 물로 몸을 씻는 식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 나온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틱톡에 주로 노인들이 등장하는 구걸 영상이 번지고 있다. 틱톡·SCMP 캡처

인도네시아에서 틱톡에 주로 노인들이 등장하는 구걸 영상이 번지고 있다. 틱톡·SCMP 캡처

매체는 소셜미디어가 널리 이용되면서 거리에서 몇 시간씩 앉아 있거나 돌아다니며 구걸하던 문화가 디지털 세계로 옮겨왔다고 분석했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이런 영상이 확산하면 노인이 착취당할 가능성이 있어 문제라고 보고 있다. SCMP에 따르면 한 계정으로 여러 여성 노인들이 돌아가며 이런 영상을 올린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이 계정의 주인은 이들 노인들과 이웃 관계인 사람이었다.

그는 "생계가 어려운 이웃 노인들의 요청으로 영상을 만들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처음엔 생방송을 1시간만 했었는데, 디지털 선물이 끊임없이 들어와 24시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이 영상에 등장한 한 66세 여성은 "구걸은 강요해서 한 것이 아니고, 식료품 살 돈도 없어 자발적으로 하게 됐다"며 "영상 한 번에 200만 루피아(약 16만원)를 벌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선 틱톡을 통해 구걸 영상이 번지고 있어 당국이 단속에 나섰다. 틱톡·템포 캡처

인도네시아에선 틱톡을 통해 구걸 영상이 번지고 있어 당국이 단속에 나섰다. 틱톡·템포 캡처

그러나 인도네시아 매체 템포는 자녀들이 설득해 구걸 영상을 촬영하는 노인들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급기야 트리 리스마하리니 인도네시아 사회부 장관은 국민에게 이런 영상을 발견하면 지역 당국에 알릴 것을 당부하고, 공무원들에게 구걸 영상 확산 방지에 힘쓰라고 요청했다. 또 착취 목적으로 노인을 구걸 영상에 출연시키는 사람은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인도네시아 정보통신부는 틱톡 측에 해당 영상들에 대한 삭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런 영상은 인도네시아 사회 전반에 번진 자선 문화를 이용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인도네시아는 영국 자선지원재단(CAF)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기부지수에서 5년 연속 세계 1위다. 미국·뉴질랜드 등을 제친 '기부 선진국'이다. CAF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인도네시아 국민의 84%가 돈을 기부했으며, 63%가 자원봉사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의 학생들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국가들의 국기를 흔들며 주요국 정상들을 환영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의 학생들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국가들의 국기를 흔들며 주요국 정상들을 환영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같은 자선 문화는 인도네시아의 종교적 특성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약 2억7352만 명)의 약 90%가 이슬람교도다. 이슬람교의 5대 의무 중 하나인 자카트(Zakat, 자선의 의무) 실천이 인도네시아에선 생활화 돼 있다고 한다.

또 구걸 영상의 확산은 인도네시아의 고질적인 빈부격차를 반영하기도 한다. 인구가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고, 천연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시아의 최대 경제국이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도네시아의 경제 성장률을 4.8%로 전망했다. 전 세계(2.9%)나 미국(1.4%) 등의 전망치보다 높다. 골드만삭스는 인도네시아가 2050년 세계 4위의 경제 대국(명목 GDP 기준)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국제 구호기구 옥스팜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부의 불평등이 심각한 국가 중 하나로 꼽힌다. 일부 부유층이 경제 성장으로 얻은 부를 독식하고 있으며, 도시와 농촌 간의 인프라 격차도 크다.

인도네시아 사회학자 디비 라흐마와티는 "디지털을 통한 기부에도 뿌듯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한, 구걸 영상들은 계속 생겨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적절한 목적과 대상에 기부할 수 있도록 정부가 교육을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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