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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 어떤 시민의 일관된 궤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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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시민사회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김장하라는 사람. 한약방을 하며 번 100억이 넘는 큰돈을 흔쾌히 기부한 사람. 평생 육영사업을 하며 어려운 학생들을 도운 사람.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을 격려한 사람. 권력자의 부정한 청탁을 거부한 사람. 30년이 넘도록 집세를 올리지 않은 사람. 진주신문, 진주환경운동연합, 형평기념사업회, 진주가정폭력상담소에 크게 기여한 사람. 불평등, 차별, 부정의와 평생 싸워 온 사람. 그럼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던 사람. 가운데 자리보다는 구석 자리에 가서 앉기를 원했던 사람. 기부를 하고도 이름을 숨기고 싶었던 사람. 그래서 세간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

연말연시 다큐멘터리 한 편의 감동

이 김장하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 연말연시에 등장한 한 편의 다큐멘터리다.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 김주완이 취재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는 지난 연말 경남 MBC를 통해 처음 방영되었고, 이어 유튜브를 통해 공개되었으며, 시청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설 연휴에 전국 방영이 이루어졌다. 시청자들은 이 타락하고 험난한 시대에 도덕적 삶을 견지해 온 김장하에게 감탄하였다. 김장하라는 예외적 인물을 통해 자기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와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기도 하고, 닮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이 사회에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나 역시 그와 같은 시청자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이 글의 목적은 그러한 감화와 감동과 안도의 소회를 적는 데 있지 않다. 그러한 소회는 다큐멘터리 시청 후에도 여전히 계속될 각자의 일상에서 열매 맺기를 기원한다. 대신, 이 글에서는 ‘어른 김장하’가 조명한 삶이 한국 시민사회의 역사에서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고 싶다.

김장하를 진주 지역 시민사회의 대부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모로 적합하다. 그는 현실 정치에 대해 회의적이었지만 정치에 무관심하지 않았다. 그는 지역 토호의 행태에 비판적이었지만, 지역 유지로서 진주를 위해 헌신했다. 직업적 정치인이 아니어도 공적 관심을 유지하고, 사리사욕이 아닌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시민사회의 핵심이다. 그 핵심을 견지해 온 김장하는 진주 시민사회 형성과 발전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운동 헌신해 온 ‘진주의 대부’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겸손의 힘

정치적 환멸이 팽배해진 시대에
한 사람의 도덕적 신념·실천 울림

개인의 힘이 모여 시민사회 탄생
민주화 이후 정치적 퇴행 되비춰

도덕적 개인과 시민운동의 관계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시대, 진주의 소리 없는 ‘기부 거인’ 김장하씨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2023년 새해를 따듯하게 데우고 있다. [유튜브 캡처]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시대, 진주의 소리 없는 ‘기부 거인’ 김장하씨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2023년 새해를 따듯하게 데우고 있다. [유튜브 캡처]

어떻게 해서 김장하는 진주 시민사회에 그토록 넓고 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나. 이 질문은 김장하가 매우 도덕적인 인물이었다는 점만으로는 대답하기 어렵다. 이 세상에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지켜나가는 개인들이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러한 삶은, 개인의 결단에 의해 상당 부분 가능하다. 평생 길에 침을 뱉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천할 수도 있고, 평생 지각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천할 수도 있고, 평생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실천할 수도 있다. 그것들도 꽤 어려운 일이지만, 원칙적으로 자신의 결단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다르다. 아무리 도덕적 천재가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사회라는 보다 큰 영역으로 나아가는 순간, 그 운동이 유지되기 위해서 많은 것이 추가로 필요하다. 일단, 독립적인 재원이 필요하다. 재원이 없이는 지속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며, 활동 범위가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주는 타인에게 좌지우지되어서는 시민운동의 대의가 흔들리기 쉽다. 금권과 건강한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인 재원이 있어야 한다.

김장하는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었나. 일찍부터 이윤이 많이 남는 한약방을 경영했기에 가능했다. 약방 머슴이었던 중졸의 소년 김장하는 미성년의 나이에 한약사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한다. 당시 국가의 자격증 체계가 허술했기에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아직 엉성하던 국가의 상태가 김장하라는 개인에게 장차 시민사회의 대부가 될 길을 터주었던 것이다. 그러한 우연에 힘입어 젊은 김장하는 한약방을 열 수 있었고, 박리다매를 통해 큰돈을 벌었다.

‘명덕신민’ ‘사무사’라는 유교 어휘

그 시대에 치부한 사람들은 김장하 이외에도 많다. 어떻게 김장하는 호의호식하지 않고 번 돈의 대부분을 남들을 위해, 그리고 시민사회 발전을 위해 쓸 수 있었는가. 시민사회라는 것은, 단지 자기 입에 풀칠하겠다는 생존의 욕구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정치판에서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욕구만으로도 성립하지 않는다. 집단적이고 공적인 삶에 깊은 관심을 갖되, 직업적 정치나 사적 이윤 추구와 일정한 거리를 둘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 긴장을 만들어주는 것은 재원도 아니고 조직도 아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상이다.

평등을 추구하고,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을 옹호하고, 보통 사람이야말로 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김장하의 사상은 어디에서 왔나. ‘어른 김장하’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픈 사람에 대한 연민과 특유의 반골 기질이 바탕이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뿐이다.

그에 못지않게 두드러져 보였던 것은 오늘날 흔히 ‘유교’, 보다 좁게는 ‘성리학’이라고 부르는 사상의 흔적이었다. 그가 세운 명신고등학교의 창학정신은 ‘명덕신민(明德新民)’이며, 그의 방에는 ‘사무사(思無邪)’라고 쓴 큰 액자가 걸려 있다. 이 어휘들은 김장하가 이른바 유교의 사상적 영향권 안에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김장하가 흔히 볼 수 있는 ‘유교 꼰대’였다는 말은 아니다. 김장하는 그 세대로서는 예외적일 정도로 여성 인권 옹호에 앞장섰다. 생불(生佛)이나 빨갱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김장하가 내세웠던 어휘는 ‘성리학적’이었다.

학생운동 출신 정치인에 대한 안티테제

사상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김장하의 태도로 보인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태도는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당겼고, 그러한 매력이 재원과 결합하자 재단이나 학교 같은 조직으로 열매 맺었다. 그렇게 생겨난 조직 속에서 개인들은 비로소 서로 연결될 수 있었다. 그러한 개인들이 모여 집단적인 힘을 발휘할 때 시민사회는 탄생하고 유지된다. 바로 그 점에서 김장하의 사례는 이른바 민주화 이후 정치적 퇴행에 대한 안티테제가 된다.

중졸 학력의 김장하의 견결한 삶은 고학력 정치인들이 보여준 정치적 퇴행과 선명하게 대조되는 안티테제다. 머슴 출신 김장하의 헌신적 삶은 화려한 학생운동 경력을 가진 일부 정치인들이 불러온 환멸에 맞서는 안티테제다. 지방에서 평생을 보낸 김장하의 일관된 삶은 수도권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에 대한 안티테제다. 시민운동으로 시종한 김장하의 삶은 시민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정계에 투신한 정치인들에 대한 안티테제다.

이러한 일들을 해낸 김장하를 도덕적 천재라고 부르는 것은 적절할까. 천재라는 말이, 여느 사람과의 현격한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면 김장하는 도덕적 천재가 맞다. 그러나 천재가 별다른 노력 없이 타고난 성정만으로 뭔가를 해내는 인물을 뜻한다면, 김장하는 천재가 아니다. 그는 자기 삶의 지향을 유지하기 위해 평생을 분투한 사람이었다. 특히 민주화운동이나 시민운동 경력을 발판으로 너도나도 정계에 입문하는 상황에서, 김장하는 결국 한자리 해먹기 위해서 선행을 한다는 의혹과 싸워야 했다. 그러한 의혹에 대해 김장하는 애써 대꾸하지 않는다. 그는 끝내 정계의 ‘한자리’를 하지 않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독립적 가치

김장하가 ‘자리’로 환원되지 않는 독립적 가치를 추구했음에도, 지역주민들은 김장하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김장하가 되고 싶었던 것은 화려한 정치인이 아닌 소박한 선생님이었다. 그가 견지한 도덕성은 학교 교정 혹은 진주와 같은 비교적 소규모 사회에 더 어울리는 것이었다. 익명성이 지배하는 보다 큰 사회, 거대한 자원을 치밀하게 배분해야 하는 정부의 현장, 그리고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국제사회에서 김장하식 사상과 태도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김장하는 지역 시민사회를 떠나지 않음으로써 이 난문(難問)에 대답할 필요를 만들지 않았다.

‘어른 김장하’는 김장하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이나, 그를 취재한 김주완 기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평생 지역신문 기자로서 살아온 김주완 기자는 그동안 기득권자의 비리와 악행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기사를 주로 써왔다고 자평한다. 그리고 나직하게 덧붙인다. 그런 방식을 통해서 이 사회는 바뀌지 않았다고. 그토록 폭로하고 비판했건만, 세상은 여전히 비리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고. 은퇴를 맞은 그는 이제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나쁜 사례를 폭로하고 비판하기보다는 좋은 사례들을 발굴하고 선양하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진주 시민운동의 숨은 대부라고 불릴만한 김장하를 취재한다. ‘어른 김장하’가 재구성한 김장하의 삶은, 악(惡)을 보는 데 지친 김주완 기자가 기어이 보고자 했던 선(善)의 모습이기도 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