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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과 올림픽 정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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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지훈 기자 중앙일보 스포츠부 차장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송지훈 스포츠부 기자

놀이나 게임, 운동경기를 할 때 ‘올림픽 정신’을 들먹이는 사람 치고 잘하거나 제대로 하는 이를 본 기억이 없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정신은 기록이나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참가에 의의를 둔다는 의미로 쓰이곤 한다.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근대올림픽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은 올림픽의 이상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며, 성공하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것”이라 말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공식 설명 또한 ‘스포츠에 의한 인간의 완성과 경기를 통한 국제 평화의 증진’이다. 금메달이나 세계신기록, 종합우승 등과 거리가 멀다.

최근에 IOC가 스스로 선언한 ‘올림픽 정신’으로 구설에 올랐다. “올림픽 정신에 따라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내년 파리올림픽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발표한 게 논란이 됐다. 두 나라는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일으킨 당사국들이다. IOC는 “어떤 선수도 러시아나 벨라루스의 여권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출전이 금지되어선 안 된다”면서 “‘중립선수’ 자격으로 파리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경기장 밖 상황을 고려하지 말고 모두 한데 모이자’는 올림픽 정신의 취지에 부합하는 결정으로 판단된다. 그런데도 유럽 각국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건 IOC가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한 채 갈팡질팡한 데 원인이 있다.

지난해 이맘때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IOC는 국제사회의 제재 분위기에 발 빠르게 동참했다. 모든 종목에서 두 나라 선수들을 퇴출했고, 국제대회 개최권도 박탈했다. 회의나 행사 참석도 제한해 국제 스포츠계에서 철저히 고립시켰다.

전쟁 양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불과 1년 사이에 IOC의 입장이 180도 바뀐 게 논란의 원인이다. ‘예상외로 전쟁이 길어져 선수들만이라도 구제할 필요성이 생긴 것’이라는 해석도 마뜩잖다. 전쟁 기간에 따라 올림픽 정신이 달라지기라도 한다는 건가.

선수 구제라는 IOC의 의지가 순수하다면 1년 만에 결정을 번복한 이유부터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과도 해야 한다. 올림픽 정신이라는 숭고한 명제가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식으로 적용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