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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투명화…발등에 불 떨어진 은행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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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윤석열 대통령이 ‘주인 없는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를 정조준하자, 금융권과 재계는 정부의 ‘지배구조 손보기’의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주요 타깃으로 꼽히는 금융지주회사와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 같은 소유분산 기업 사이에선 긴장감이 흐른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열린 금융위 업무보고에선 소유권이 분산된 기업에 대한 지배구조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윤 대통령은 “주인이 없는,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공익에 기여했던 기업들”이라면서 “정부의 경영 관여가 적절하지 않으나,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지배 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특히 윤 대통령은 은행을 언급하면서 “과거 위기 시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했던 경험을 갖고 있다. 그만큼 공정하고 투명한 은행의 거버넌스가 중요하다”고 했다. 은행을 ‘공공재’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은행 시스템은 군대보다도 중요한, 국방보다도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하면서다.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금융사 거버넌스 문제가 투명하게끔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금융당국은 이미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 작업에 돌입했다. 여기엔 임원추천위원회(임추위) 독립성 강화 방안 등이 포함된다. 임추위가 현직 회장의 ‘거수기’로 작동하며 ‘셀프 연임’의 도구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취지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을 공공재라 언급한 만큼 다양한 방면에서 정부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늘어나게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당장 논란을 낳았던 금융지주 경영진 인사에 대한 개입이 더욱 공공연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최근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인 우리금융지주가 주 타깃으로 꼽힌다. 이미 금융당국 수장은 우리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에 대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주인이 없는 조직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어떻게 선임하는 게 맞는지 질문할 수 있다”며 “우리금융뿐만 아니라 다른 경우에도 합리적이고 투명한 (인선) 기준이 맞느냐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인사 개입 도구로 국민연금이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윤 대통령이 “소유가 분산돼 지배구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일어날 수 있는 경우에는 스튜어드십(stewardship)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다. 스튜어드십은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의 의사 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행동이다. 4대 금융지주 모두 국민연금이 1대 혹은 2대 주주다.

소유분산 기업으로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라는 점에서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KT와 포스코도 윤 대통령 발언의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장 KT의 경우 이사회가 구현모 사장의 연임을 결정하자, 국민연금은 ‘투명한 절차가 아니었다’며 공개 반대한 상태다. 연임 여부는 오는 3월 주주총회에서 확정되는데 유력해 보였던 구 사장의 연임 가능성이 윤 대통령의 발언 이후 불투명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포스코그룹의 경우 최정우 회장은 2018년 7월 취임한 뒤 한 차례 연임해 내년 3월까지 임기다.

정부가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 구조 문제에 사실상 직접 칼을 댄다는 측면에서 또다시 관치(官治) 논란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소유분산 기업은  ‘주인 없는 기업’이 아니다. ‘주인이 없다’는 인식이 무분별한 개입을 부르는 것”이라며 “이사회의 실질적인 기능을 강화해 경영진을 견제·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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