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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아나는 간호사들…환자 18명씩 감당, 미국의 4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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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이 지난달 30일 본지 인터뷰에서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11월 간호법 제정 궐기대회에서 협회 임원 12명과 함께 삭발했다. 전민규 기자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이 지난달 30일 본지 인터뷰에서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설명하고 있다. 신 회장은 지난해 11월 간호법 제정 궐기대회에서 협회 임원 12명과 함께 삭발했다. 전민규 기자

“코로나19 극복에 애쓴 간호사 불러서 차라도 한 잔 주면서 격려해주면 좋겠습니다.”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지난달 30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런 요청을 했다. 올해 간호협회 창립 100주년을 맞아 간호사가 한국 근현대사에 어떤 활약을 했는지 설명하던 중 나온 얘기다. 신 회장은 “간호사가 24시간 환자 곁을 지키느라 코로나19에 가장 많이 감염됐다. 방호복을 아낀다고 4시간 연속 근무했다(원래 2시간 교대). 화장실 갔다 오면 방호복을 갈아입어야 해서 물도 안 마셨고, 어머니 임종조차 못 한 사람이 있다”고 회상했다.

신 회장은 “병원이 애쓴 게 사실이지만 병원에 보상한 것에 비하면 간호사는 별로 받은 게 없다. 900억원 수당 나눠준 게 전부이다. 그래도 간호사는 딴소리 안 한다. 마음이 예쁘지 않으냐”며 “코로나19에 인력이 차출되면서 일반 병동 간호사도 두 세 명 몫을 했다. 윤 대통령이 ‘당신들 덕분에 마스크를 벗게 됐다’고 인정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간호사가 아니었으면 더 많은 사망자가 나왔을 것”이라며 “우리 협회와 국립중앙의료원이 중환자 전담 간호사를 700명 교육했는데, 이게 중단됐다. 팬데믹이 또 올테니 미리 준비해야 하는데…”라고 아쉬워했다.

신 회장은 1903년 미국인 간호선교사 마거릿 제인 에드먼즈가 서울 중구 정동에 보구녀관(최초의 여성병원)에서 간호원 양성학교를 설립한 후 간호사는 120년간 ‘애국의 길’을 걸어왔다고 강조했다. 1907년 군대해산 때 간호학교 학생들이 길거리에 쓰러진 사상자 구급 활동을 했다. 신 회장은 74명의 간호사 독립운동가를 발굴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간호사이다. 박 선생은 1919년 3·1운동 때 간호사·조산사를 모아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1960~70년대 독일에 간호사 6000여명이 파견돼 파독 광부와 함께 1억164만2000 달러(1255억원, 진실과화해위원회 자료)라는 큰 돈을 국내로 송금했다. 이게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산업화의 밑천이 됐다. 가족이 소를 샀고, 오빠·동생의 학비가 됐다. 1977~79년 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 간호사 1340명이 파견돼 오일달러를 벌었다.

작년 11월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협회가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작년 11월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간호협회가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신 회장은 간호사의 열악한 근로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결코 환자 서비스 질이 올라갈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의료법상 간호사 1명이 12명(미국 5명, 일본 7명)의 환자를 보게 돼 있다. 실제로는 18명을 간호한다. 신 회장은 “환자 18명에다 가족·간병인을 합해 36명의 갖가지 불평과 요구를 견뎌야 하고 야간에는 50명을 맡기도 한다”며 “일부 병원에서 저녁·야간에 간호사가 의사 대신 약을 처방한다. 약 조제, 채혈, X레이 촬영 등도 간호사가 한다. 이런 불법행위를 하도록 병원과 의사가 만든다”고 지적했다.

신 회장은 “3교대 근무에 간호사가 녹아난다”고 호소했다. 신규 간호사는 환자 파악하고 정리하느라 8시간 교대 앞뒤 2시간씩 총 12시간 일한다. 신 회장은 “언제 이성을 만나고, 애를 낳을 수 있겠느냐”며 “3교대 근로자를 위한 모성보호제를 만들어 달라고, 임신한 간호사가 있으면 인력이 더 필요하다고 수없이 얘기해도 정부가 신경 안 쓴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탓에 신규 간호사의 47%가 1년 안 돼 그만둔다. 간호사 면허가 ‘7년 면허(평균 근속기간 7년 5개월)’로 불린다.

신 회장은 이런 현실을 타개하는 데 간호법 제정이 대안이라며 2년 넘게 매달려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국회 앞에서 삭발했다. 이 법안은 지난해 5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고, 지금은 법제사법위원회에 묶여 있다. 민주당은 법안을 밀지만 국민의힘은 반대 입장이다. 의사·간호조무사·의료기사 등이 강하게 반대한다. 다음은 신 회장과 일문일답.

간호법이 뭘 담고 있나.
“간호사의 권리 보장, 인권침해 금지, 일·가정 양립 지원, 근무여건 조사, 정부·지자체의 지원 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33개국에 간호법이 있다.”
간호사의 단독개원으로 가려는 게 아닌가.
“간호사는 의료기관 개설권이 없다. 복지부도 그건 안 된다고 명확히 한다. 간호법안에도 단독개원 조항이 없다.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의료법에 따른 의사·치과의사·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라고 명시할 뿐이다.”
법이 없어서 힘든 건 아니지 않나.
“의료법은 70년 지난 낡은, 일본강점기의 잔재 법률이다. 원래 독립 간호사법(간호부 부칙)이 있었는데, 1944년 의료법(조선의료령)에 통합됐고, 그게 의료법으로 계속 이어져왔다. 일본은 1948년 나눴다. 의료법은 의사와 의료기관 개설·운영을 위한 법이다. 간호법이 생기면 의료체계가 망가진다는데, 다른 나라를 보면 오히려 발전했다.”

신 회장은 “초고령화 시대에 재택돌봄·재택사망을 유도하려면 요양보호사·물리치료사·영양사 등의 팀워크가 중요하며 코디네이터 역할을 간호사가 맡아야 한다”며 “50~60대 은퇴한 경험 많은 간호사가 적임자”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윤 대통령이 지난 대선 후보 시절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 원희룡 선거대책본부 직능총괄본부장(현 국토부 장관)도 선거 5일 전 약속했다”고 말했다.

☞신경림(69)=이화여대 간호대학 출신으로 세 차례 대한간호협회 회장을 지냈고, 지금 네 번째 임기 만료(2월)를 앞두고 있다. 19대 국회 새누리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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