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3세 낭만가객 최백호 “아흔 살에도 노래하겠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73세 낭만 가객 최백호는 처음 펴낸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를 통해 노래에서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3세 낭만 가객 최백호는 처음 펴낸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를 통해 노래에서의 ‘진정성’을 강조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노래할 때 그 세계에는 오로지 소리만 있어요. 어떤 면에선 ‘작두 탄다’고 하는 거죠.”

73세의 가객은 50년이 다 되도록 ‘작두 타는’ 일에 진심이었다. 음악 47년, 라디오 진행 15년, 그림 14년. 한번 시작하면 기본 10년은 꾸준히 해 나가는 그가 이번엔 책에 도전했다. 매서운 한파가 덮친 지난달 25일 가수 최백호를 만났다. 그의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마음의숲)와 함께였다.

산문집엔 그의 인생과 음악관을 담은 38편의 글이 실렸다. 나무·바다 등을 소재로 직접 작업한 그림 30점도 수록됐다.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을 짚어보고 싶었다”면서 “진정성 있게 나 자신을 풀어내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그는 출판사에 “철자나 문법이 틀리지 않는 한 한 글자도 고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최백호의 이름 앞에는 늘 ‘낭만 가객’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1995년 발표한 명곡 ‘낭만에 대하여’는 40대 중반의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줬다. 이후 ‘낭만’은 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2008년부터는 ‘최백호의 낭만시대’(SBS 러브FM)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낭만에 대하여’가 탄생하고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마이너스 통장에 플러스가 새겨지는 날들이 드물던 때, 돈이나 벌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던 노래”였다. 그렇게 태어난 노래가 “스스로 자신의 팔자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음반 제작자와의 만남,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KBS)에 삽입하게 된 사연 등을 소개했다.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1977)’을 비롯해 ‘입영전야’ ‘영일만 친구’ 등 히트곡을 낸 20대 이후 40대 중반 재기하기까지, 오랫동안 이어진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물었다.

30대를 어떻게 보냈나.
“조바심이 났다.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고, 술집에서 매일 노래하니 지치기도 했다. 희망도 없고 노래 자체도 하기 싫었다. 새 삶을 찾아 가족들 데리고 미국까지 갔는데 거기서도 쉽지 않았다.”

그는 “미국에서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며 “복수심이 들 정도였는데, 어느 날 문득 그 사람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사람 때문에 미국을 떠나게 됐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수 있었다는 것이다.

40대 중반 새로운 전성기를 얻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고 며칠 만에 조용필씨 전 매니저를 만나 앨범을 낼 수 있었다. 1년 반 동안 전혀 반응이 없었는데 라디오 방송을 듣던 김수현 작가의 귀에 들어가 노래가 드라마에 나오면서 인기를 얻었다. 우연과 우연이 이어졌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진정성’은 그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음악에 대해선 더욱 철저하다. “여든에는 여든의 호흡으로, 아흔에도 숨이 좀 가파르겠지만 충분히 노래하겠다”고 책에 적었다.

진정성 있는 노래는 어떤 것인가.
“무엇보다 내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 자식과 손주, 몇 대에 걸쳐 내 노래를 들을 텐데 그들이 내 노래를 부끄러워해선 안되지 않나.”
진정성을 담기 위해 어떻게 작업하나.
“가사가 매우 중요하다. 1970년대만 해도 가사를 먼저 쓰고 곡을 붙였는데, 요즘은 멜로디에 가사를 입히는 식으로 작업하다 보니 가사에 진정성이 없다. 가사를 먼저 쓰면 표절이 나올 수 없다.”
책에서도 표절을 강하게 비판했다.
“표절은 도둑질이다. 과거엔 표절이 들키면 가문의 수치로 고개를 못 들고 다녔다. 요즘엔 곡 돌려주고, 바꿔주고 시간 지나 버젓이 TV에 나온다. 표절을 없애지 않고는 K팝의 영광이 오래갈 수 없다.”

아이유, 타이거JK 등 젊은 음악인들과 협업을 많이 했던 그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많은 공부가 됐다”며 “특히 힙합 장르는 예전엔 이런 게 음악인가 했었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와 함께 ‘가요계 3대 코(최배코)’로 새로운 음악에 도전한다. 최백호만의 감성이 스며든 곡도 발표할 계획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진정성을 가지면 좋은 결과가 틀림없이 나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