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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방해' 이병기·안종범 등 1심 무죄…"입증 안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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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세월호 특조위 설립과 활동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원청사를 나서고 있다. 뉴스1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조사를 막기 위해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방해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이중민) 는 1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 현기환 전 정무수석, 현정택 전 정책조정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김영석 전 해양수산부 장관,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등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월까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 동안의 행적을 조사하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집단으로 대응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특조위 진상규명국장 임용 절차를 중단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 과정에 이병기 전 실장의 지시나 보고 절차가 인정되지 않고, 실무진도 자신들이 받은 지시 배후의 목적에 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다는 입증이 되지 않아 공모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무원의 특조위 파견을 지연시키거나, 다시 원래 근무처로 복귀시키는 등의 행위도 “암묵적·순차적 공모관계를 증명하기 어렵다”고 봤다. 비서실 행정관에게 업무 범위 밖의 일을 시켰다며 기소된 점에 대해서도 “특조위 부위원장 면직 관련 검토 보고서는 당시 비서실 행정관 직무 범위 내에 있고, 이 보고서에 피고인들이 관여했거나 보고받은 직접 증거를 찾을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1일 오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재판부는 “당시 특조위 부위원장 직무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있어서 사퇴 요구와 극언도 서슴지 않았던 점이 확인된다”면서도 “자신의 판단으로 사퇴 권유가 위법부당하다고 인식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됐을 수 있다”고 밝혔다. 누군가의 지시나 요구를 받아 작성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재판부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단순히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한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법리 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해야 인정된다”며 “직권남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 권리행사를 방해한 점이 없다면 기소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의 조사 등 업무 권한이 추상적이고, 직권남용죄의 대상이 되는 권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2019년 6월 서울동부지법에서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과 이병기 전 실장이 함께 직권남용으로 기소돼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사건은 특조위 설립 과정과 활동 과정 시기의 내용을 다뤘다. 이번 사건은 특조위 활동 후반과 종료 시점까지의 상황에 집중돼 있다. 피고인 측의 ‘이중 기소’ 주장도 있었지만, 재판부는 “일부 내용적 연관이 있을 뿐, 범행 일시나 방법에서 전혀 다르다”며 별개의 사건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이병기 전 비서실장이 2015년 11월 특조위 현안을 보고받은 뒤 현정택 전 정책조정수석, 안종범 전 경제수석 등에게 ‘청와대 행적조사 안건이 채택되지 않도록 대응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혐의 등으로 이들을 기소했다. 이후 특조위 공무원 파견을 줄이고, 진상규명국장 임명 절차를 중단해 공석으로 남기고, 특조위 부위원장 사퇴를 논의하는 등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 특조위 업무를 방해했다는 게 검찰이 주장한 범죄사실이다.

이병기 전 실장은 이날 선고 직후 입장을 묻는 기자들에게 “희생자들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고 유가족분들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김종기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국가가 참사를 축소하고 은폐하고 특조위 조사와 구성을 방해하는 국가적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번 판결은 진실을 밝혀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유족과 국민의 염원을 비상식적 법논리로 부정하고 기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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