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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팔자 찾아간 '낭만에 대하여'...진정성은 결과를 불러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가수 최백호가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로 돌아왔다.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출판사에서 최 씨를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가수 최백호가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로 돌아왔다.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출판사에서 최 씨를 만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노래할 때 그 세계에는 오로지 소리만 있어요. 어떤 면에선 ‘작두 탄다’고 하는 거죠.”

73세의 가객은 50년이 다 되도록 '작두 타는' 일에 진심이었다. 음악 47년, 라디오 진행 15년, 그림 14년. 한번 시작하면 기본 10년은 꾸준히 해 나가는 그는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았다. 매서운 한파가 덮친 지난달 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출판사에서 가수 최백호를 만났다. 그의 첫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와 함께였다.

산문집엔 최씨의 인생과 음악관을 담은 38편의 글이 실렸다. 나무, 바다 등을 소재로 직접 작업한 그림 30점도 수록됐다.  책 제목은 최씨가 직접 지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잃어버리고 사는 것들을 짚어보고 싶었다”면서 “진정성 있게 나 자신을 풀어내 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글을 썼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출판사에 "철자나 문법이 틀리지 않는 한 원고를 한 글자도 고치지 말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추하게 늙고 싶지 않다”…최백호와 낭만

최백호의 이름 앞에는 늘 ‘낭만 가객’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1995년 발표한 명곡 ‘낭만에 대하여’는 40대 중반의 그에게 제2의 전성기를 가져다줬다. 이후 ‘낭만’은 그와 뗄레야 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2008년부터는 '최백호의 낭만시대'(SBS 러브FM)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책에서 명곡이 탄생하고 대중에게 알려지기까지의 과정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마이너스 통장에 플러스가 새겨지는 날들이 드물던 때, 돈이나 벌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만들었던 노래"가 '낭만에 대하여'였다.
그렇게 태어난 노래가 “스스로 자신의 팔자를 개척해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음반 제작자와의 만남,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KBS)에 삽입하게 된 사연 등을 소개했다. 20대 성공적인 데뷔 후 40대 중반 재기하기까지, 오랫동안 이어진 어두운 터널을 어떻게 버텨왔는지 물었다.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1977)’ 이후 30대를 어떻게 보냈나.

“(히트곡을 써야 한다는) 조바심이 났다.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고, 술집에서 매일 노래하니 지치기도 했다. 희망도 없고 노래 자체도 하기 싫었다. 새 삶을 찾아 가족들 데리고 미국까지 갔는데 거기서도 쉽지 않았다.”

-책에 힘들었던 미국 생활에 대한 내용이 있다.  

“미국에서 나를 정말 힘들게 했던 사람이 있었다. 복수심이 들 정도였다. 어느 날 문득 그 사람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미국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 거고, 한국에 돌아와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지 못했을 테니까.”

-40대 중반에 새로운 전성기를 얻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낭만에 대하여’를 만들고 며칠 만에 조용필 씨 전 매니저를 만나 앨범을 낼 수 있었다. 1년 반 동안 전혀 반응이 없었는데 라디오 방송을 듣던 김수현 작가의 귀에 들어가 노래가 드라마에 나오면서 인기를 얻었다. 우연과 우연이 이어졌다. 물론 좋은 노래이지만,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

책에 "매니저 없이 일해 힘들 때도 많지만 내 고집대로 당당하게 일할 수 있었다"고 적은 최씨는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 추한 모습을 많이 보는데, 나는 추해지고 싶진 않더라"고 말했다.

최백호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도서출판 마음의숲

최백호 산문집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도서출판 마음의숲

“인생의 성패는 진정성에서 결정”

책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진정성’은 그가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음악에 대해선 더욱 철저하다. "사람의 감성을 끌어당기는 중력의 차이, 거기에서 히트곡이 나온다. 여든에는 여든의 호흡으로, 아흔에도 숨이 좀 가파르겠지만 충분히 노래하겠다"고 책에 적었다.

-진정성 있는 노래는 어떤 것인가.

“무엇보다 내가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내 자식과 손주, 몇 대에 걸쳐 내 노래를 들을 텐데 그들이 내 노래를 부끄러워해선 안되지 않나.”

-진정성을 담기 위해 어떻게 작업하나.

“가사가 매우 중요하다. 70년대만 해도 가사를 먼저 쓰고 곡을 붙였는데, 요즘은 멜로디에 가사를 입히는 식으로 작업하다 보니 가사에 진정성이 없다. 가사를 먼저 쓰면 표절이 나올 수 없다.”

-책에서도 표절을 강하게 비판했다.

“표절은 도둑질이다. 과거엔 표절이 들키면 가문의 수치로 고개를 못 들고 다녔다. 요즘엔 곡 돌려주고, 바꿔주고 시간 지나 버젓이 TV에 나온다. 땀 흘려 창작하는 많은 음악인보다 표절하는 사람이 더 알려지고 돈을 버니 우리 사회가 왜 이러지 하는 회의감도 든다. 표절을 없애지 않고는 K팝의 영광이 오래갈 수 없다.”

최백호는 첫 산문집을 통해 "늙은 목소리일지라도 진심이 한결같다면 행복하리라 믿는다"며 진정성에 주목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백호는 첫 산문집을 통해 "늙은 목소리일지라도 진심이 한결같다면 행복하리라 믿는다"며 진정성에 주목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K팝의 전 세계적 인기를 어떻게 보나.

“현재 주목받는 K팝은 댄스곡 위주다. 발라드 등 다른 장르가 알려지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BTS, 블랙핑크 등 인기가 대단하던데 사실 개천에서 용이 나온 것과 다름없다. 지금은 BTS 다음 세대를 대비할 힘이 안 보인다. 이제는 환경이 받쳐줘야 한다.”

-음악 환경은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보나.

“곡 쓰고 편곡 하는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 중요한데, 생활이 안 되니 다들 포기한다. 코로나19로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홍대 주변 라이브 공연하는 업소는 임대료 때문에 문을 닫았다. 시나 국가에서 연주자들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아이유, 타이거JK 등 젊은 음악인들과 협업을 많이 했던 그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많은 공부가 됐다”며 “특히 힙합 장르는 예전엔 이런 게 음악인가 했었는데 묘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와 함께 ‘가요계 3대 코(최배코)’로 새로운 음악에 도전한다. 최백호 만의 감성이 스며든 곡도 발표할 계획이다.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식당 하시는 분들께 ‘매일 집 앞을 조금씩 쓸어 보라’고 권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이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어서다”라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진정성을 가지면 좋은 결과가 틀림없이 나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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