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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언 반도체에 수출 한파 길어진다…무역적자도 최대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25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뉴스1

지난달 25일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는 모습. 뉴스1

꽁꽁 언 반도체에 수출 한파가 길어지고 있다. 수출이 4개월 연속 감소했고, 무역적자는 127억 달러로 역대 월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기가 꺾이는 위험 신호가 이어지며 올해 한국 경제 전반에 어려움이 찾아올 거란 전망이 나온다.

1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462억7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6.6% 감소했다. 수입은 589억6000만 달러로 같은 기간 2.6% 줄었다. 월간 수출액이 5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진 건 2021년 2월(447억1000만 달러) 이후 약 2년 만이다. 수출은 지난해 10월(-5.8%) 이후 넉 달째 역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1월 수출 실적(554억6000만 달러)이 동월 기준 가장 좋았던 데 따른 기저효과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

수출이 수입보다 훨씬 많이 줄면서 무역수지는 126억9000만 달러(약 15조6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8월(94억3000만 달러)을 넘어 월간 최대 적자 폭을 찍었다. 지난해 전체 무역적자(474억7000만 달러)의 26.7%가 한 달 만에 쌓였다. 무역적자 행진은 지난해 3월부터 11개월째 이어지게 됐다. 이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전인 1995~1997년 이후 25년여 만에 처음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수출 감소엔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 지속, 반도체 업황 악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수출 전선을 떠받치는 '1위 품목' 반도체의 부진이 직격탄이 됐다. 반도체 수출은 메모리 가격 하락 속에 1년 전보다 44.5% 급감하면서 실적 악화를 이끌었다. 6개월 연속 수출 역성장이다.

지난달 말 블룸버그통신은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역대 최악의 침체 상황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D램 고정가격은 지난해 5~6월 3.35달러에서 지난달 1.81달러까지 미끄러졌다. 여기에다 꾸준히 증가해온 시스템 반도체 수출마저 지난달 들어 감소세(-25%)로 전환됐다.

반도체 기업들은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97%나 줄어든 2700억원에 그쳤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에만 1조7012억원의 영업손실을 봤다. 문동민 산업부 무역투자실장은 "반도체는 상반기에 어렵고 하반기에 재고 소진 등을 거쳐 회복될 거라고 보는 게 일반적 관측"이라고 밝혔다.

다른 수출품들도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15대 주요 품목 가운데 석유화학(-25%), 철강(-25.9%), 디스플레이(-36%) 등 10개가 감소세를 보였다. 그나마 자동차(21.9%), 선박(86.3%) 등이 수출 실적에서 버텨줬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지역별 수출도 줄줄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이 계속 흔들리는 게 뼈아프다. 반도체 수출 감소, 중국 내 코로나19 재확산 여파로 대(對) 중국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31.4% 줄었다. 8개월째 수출 감소세가 이어지는 중인데, 감소 폭은 지난달이 가장 컸다. 한 달간 대중 무역에서만 39억7000만 달러 적자를 봤다.

또한 신흥 시장인 아세안(-19.8%), 주력 시장인 미국(-6.1%) 모두 수출이 줄었다. 반면 원유·가스·석탄 등 3대 에너지원 수입은 157억90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61억7000만 달러)보다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무역적자를 부추기는 주요인으로 작용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재정경제금융관 회의에서 "1월 수출입 동향은 아직 우리 경제가 극심한 한파의 한가운데에 있음을 나타낸다"면서도 "1월을 지나면서 계절적 요인이 축소되고, 중국의 리오프닝 효과가 시차를 두고 반영돼 무역수지는 점차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한 수출 실적이 크게 좋아지긴 쉽지 않다. 얼어붙은 반도체 시황도 당장 반등하긴 어렵다. 국내 경제 버팀목인 수출이 계속 흔들리면 경상수지 악화, 기업 고용 축소 등 연쇄적인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또 최근 국제유가 등 에너지 가격이 전고점(前高點)에 비해서는 다소 낮아졌지만, 과거보다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당분간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나올 경상수지도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경제 지표 곳곳에서 경고등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산업활동동향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산업 생산은 전월보다 1.6% 감소했다. 2020년 4월(-1.8%) 이후 32개월 만의 최대 감소 폭이다. IMF는 같은 날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을 1.7%로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전망치(2.0%)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취업자 증가 폭은 지난해 12월까지 7개월 연속 둔화하는 상황이고, 부동산 시장도 빠르게 식어가고 있다.

복합 악재가 잦아들 때까지 정부가 주요 경제주체에 ‘버틸 힘’을 지원해줘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출도 안 좋고 국내 소비·부채·투자 등도 모두 어려워서 적어도 상반기까진 경기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정부는 무역금융 공급 확대와 기업 투자·마케팅 지원, 규제 개선 등 수출 드라이브를 이어가는 한편, 저소득층 중심으로 재정 지출을 늘려 실물 경기도 챙길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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