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핵무기 전략과 지침 등을 소개하는 보고서를 원문 공개 3개월만에 한국어로 발간했다. 미국이 뒤늦게 해당 보고서를 한국어 버전으로 발간한 것과 관련해선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둘러싼 한국 내 의구심을 해소하려는 의도가 담겼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 국방부는 지난 31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핵 태세 검토 보고서(NPR)의 한국어 판을 게재했다. 석달 전인 지난해 10월 27일 원문으로 보고서를 발간한지 3개월여만이다. 8년 또는 4년 단위로 발간되는 NPR은 북한, 중국, 러시아, 이란 등 핵 위협 세력을 기술하고 이들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미국의 핵 전략을 담고 있다.
한국어판 보고서의 추가 발간과 관련해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1일 트위터에 “핵무기 전략 등에 대한 투명성과 관련, 우리의 헌신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2022 NPR을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한국어, 러시아어 등 5개 언어로 추가로 발행했다”고 설명했다.
미 국방부는 2010년 판에선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 중국어, 프랑스어 요약본을 제공했고, 2018년 판에선 스페인어와 아랍어 대신 한국어와 일본어 요약본을 발간했다. 올해 미국이 이 보고서의 한국어판을 추가 발간하면서 요약본이 아닌 원본을 공개한 것 역시 이례적이란 평가다.
미국의 이 같은 행보는 미 핵우산을 둘러싸고 확산되고 있는 한국 내 의구심과 맞닿아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한국에선 북한이 핵 공격을 감행할 경우 미 핵우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일부 정치권 등을 중심으로 독자 핵무장론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해당 보고서의 한국어판을 공개한 것은 우방국인 한국의 여론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와 관련이 있다는 평가다.
실제 핵 태세 검토 보고서엔 “미국의 대북 전략은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맞이할 심각한 결과를 김정은 정권에 분명히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다. 미국과 우방국·협력국에 대한 북한의 핵 공격은 허용할 수 없으며 정권의 종말로 이어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상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공식화한 문구다.
또 ‘우방국과 협력국에 주는 확신’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우방국은 다양한 전략적 위협을 미국이 억제하고 위기나 충돌 시 감수해야 할 위험을 미국이 완화해줄 의향과 능력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핵 확장억제는 우방국과 협력국에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획득하지 않고도 전략적 위협에 저항하고 안보를 유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방식으로 미국의 비확산 목표 성취에 기여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특히 이번 보고서의 번역본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의 방한 기간 중 나왔다. 지난달 30~31일 방한한 오스틴 장관은 미군기지 방문 같은 공개 일정 없이 한·미 국방장관 회담, 윤석열 대통령 예방을 마친 뒤 바로 한국을 떠났다. 방한 기간 오스틴 장관은 기존 미 확장억제 공약을 거듭 강조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이 역시 국내 불안 여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원 포인트’ 방한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