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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는 삼국지](6) 화웅의 목을 벤 관우, 호뢰관서 삼형제에게 혼쭐난 여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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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에게 실망한 진궁은 조조를 버리고 가족이 있는 동군(東郡)으로 갔습니다. 조조도 진류(陳留)로 돌아와 의병을 모집합니다. 이때, 효렴(孝廉) 위홍이 재산을 털어 조조의 의병모집을 지원해 줍니다. 하후돈, 하후연, 조인, 조홍 등 조조의 사촌 형제들이 장병들을 이끌고 참가하여 조조의 군세는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군사조직을 완비한 조조는 동탁을 토벌하자는 격문을 띄웁니다. 이에 17명의 제후가 응답합니다. 북평태수(北平太守)인 공손찬도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평원현령(平原縣令)인 유비도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공손찬의 군대에 함께 참가합니다.

18제후들이 모두 모여 영채를 세우자 그 길이만도 3백여 리나 되었습니다. 18제후들은 4대에 걸쳐 삼공(三公)을 지낸 명문가의 후손인 원소를 맹주로 옹립합니다. 원소는 제후들을 거느리고 맹약서를 낭독했습니다.

‘한 나라가 불행하여 황조의 기강이 흐트러지니, 이 기회를 틈탄 역적 동탁이 멋대로 놀아나 그 화는 지존에 이르렀고 그 독은 백성에게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원소 등은 사직이 무너질까 우려되어 의병을 모아 함께 국난 극복에 나서고자 합니다. 이에 맹세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그 목숨을 잃게 되는 것은 물론 가족마저 씨가 마를 터이니 황천과 후토, 조상의 영명한 넋들이시여, 낱낱이 굽어살피옵소서.’

맹약서를 다 읽은 원소는 제물의 피를 마셨습니다. 다른 제후들도 돌아가며 마셨습니다. 모두가 맹약을 따르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러한 행위를 ‘삽혈맹서(歃血盟誓)’라고 합니다. 유비가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을 때도 삽혈맹서를 하였습니다. 협객(俠客)은 중국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삽혈맹서는 이들만의 특수한 신고식입니다. 이를 통해 죽음까지도 함께 하며 절대 배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18제후의 삽혈맹서는 깨지고 맙니다. 저마다 생각하는 것이 다른 까닭이었습니다.

연합군의 맹주가 된 원소 [출처=예슝(葉雄) 화백]

연합군의 맹주가 된 원소 [출처=예슝(葉雄) 화백]

연합군에서 장사태수(長沙太守) 손견이 선봉으로 나서자, 동탁은 효기교위(驍騎校尉) 화웅을 시켜 사수관에서 이들과 맞서게 합니다. 그 사이 연합군의 제북상(濟北相) 포신이 먼저 공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걸었지만 화웅에게 패했습니다. 손견은 화웅과 일전을 벌이며 승기를 잡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보급을 맡은 원술은 손견을 경계해 군량을 제때 보내지 않았습니다.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 싸워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데 쫄쫄 굶고서야 어찌 싸울 힘이 나겠습니까. 화웅이 한밤중에 들이닥치자 손견군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목숨이 위태해지자 손견은 자신이 쓰고 있던 붉은 수건을 부하 조무의 투구와 바꿔 쓰고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결국 조무가 손견을 대신해 희생됐습니다.

연합군의 제후들은 화웅의 기세에 눌려 누구 하나 나서는 자가 없었습니다. 화웅이 연합군의 영채 앞까지 와서 싸움을 걸자, 남양태수(南陽太守) 원술의 부장인 유섭과 기주목(冀州牧) 한복의 부장인 반봉이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 화웅의 칼에 목이 잘렸습니다. 누구도 나서기를 꺼려할 때, 9척 장신에 두 자나 되는 수염을 휘날리며 우렁찬 목소리로 관우가 나섭니다.

“소장이 가서 화웅의 머리를 잘라 휘하에 바치겠소.”

원술은 관우의 직책이 마궁수임을 알고는 주제넘게 허튼소리를 지껄인다고 호통을 쳤습니다. 조조는 그런 원술을 타이르고는 관우에게 뜨거운 술 한 잔을 따라주며 응원했습니다. 그러자 관우가 멋진 말을 한마디 합니다.

술잔은 잠시 거기 놓아두소서. 제가 금방 갔다 돌아오겠습니다.

관우는 말을 타고 달려가 간단히 화웅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조조가 준 술을 마셨습니다.

“술이 아직도 따뜻하니 좋구려.”

관우가 술이 채 식기도 전에 화웅을 베었음에도 원술은 난리만 쳤습니다. 동탁을 무찌르러 모인 자들이 공은 세우지도 못한 채, 오히려 공을 세운 자를 헐뜯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은 보나 마나 뻔한 것이겠지요. 조조만이 몰래 술과 고기를 보내서 삼형제를 위로했습니다.

화웅 [출처=예슝(葉雄) 화백]

화웅 [출처=예슝(葉雄) 화백]

화가 난 동탁은 맹주인 원소의 삼촌 원외 일가족을 몰살하고 여포를 앞세워 호뢰관에 진을 쳤습니다. ‘사람 중엔 여포’라. 제후 여럿이 여포와 전투를 벌였지만 싸우는 족족 패했습니다. 공손찬도 여포와 맞붙었습니다. 공손찬이 위태롭게 되자 호랑이 수염에 고리눈을 부릅뜬 장비가 ‘성씨가 셋인 종놈아! 달아날 생각 마라!’라면서 여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성씨가 셋인 종놈’은 여포가 친아버지와 양부인 정원을 거쳐 동탁을 아버지로 섬긴 것을 두고 그때그때 이해타산에 따라 배신하는 천한 놈이라 욕하는 말입니다.

장비와 여포가 50여 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자 관우가 합세했습니다. 다시 30여 합을 싸웠습니다. 그래도 여포는 끄떡없었습니다. 유비가 쌍고검을 들고 여포에게 달려들었습니다. 3 대 1의 불꽃 튀는 싸움은 한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여포도 세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하기가 벅찼습니다. 여포는 말을 돌려 후퇴했습니다. 또 한 번의 환호성이 연합군 영채를 가득 채웠습니다.

모종강은 동탁이 조정을 어지럽히지 않았으면 제후들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제후들이 거병하지 않았으면 삼국도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라 평했습니다. 즉, 동탁으로 인해 천하가 혼란해지고 결국 삼국이 정립되었다고 했습니다.

호뢰관에서 여포를 공격하는 유비, 관우,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호뢰관에서 여포를 공격하는 유비, 관우, 장비 [출처=예슝(葉雄) 화백]

중국 샤먼(厦問)대학교 이중톈(易中天)교수는 CCTV의 〈백가강단〉에서 ‘삼국지 품평(品三國志)’으로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은 역사학자입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지은 중국통사 『삼국기(三國紀)』에서 천하삼분의 시작을 원소가 열었다고 했습니다. 십상시를 주살하기 위한 의견을 낸 자가 원소였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원소가 동탁을 불러들여 차도살인(借刀殺人)을 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했지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동탁에게 되려 칼자루를 쥐여준 꼴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환관들을 몰살하기에만 정신이 팔렸던 원소의 잘못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자초했다고 평가했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원소가 군벌을 불러들이자는 의견을 냈을 때 반대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진림과 조조입니다. 이들의 의견을 듣고 최종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사람은 하태후와 대장군 하진이었습니다. 백정에서 일약 태후와 대장군이 된 이들은 지도자의 위치에만 있었을 뿐 정책을 심사숙고해 결정을 내리는 판단력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단순무식한 판단과 결정이 후한의 멸망을 재촉하고 삼국시대를 앞당긴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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